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연평해전

윤의사 2024. 6. 15. 11:11

1999615일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 침범으로 양측 해군 함정간 교전이 일어나 우리 해군이 북한 해군을 압도적으로 이긴 해전이다.

꽃게가 많이 잡히는 서해 연평도에는 꽃게철이 되면 북한 어선이 대규모로 NLL 근처에서 조업을 하고, 북한군이 이를 감시하러 내려와 우리 해군과 대치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199966일부터 15일까지 NLL 근처로 북한군이 드나들었고, 해전 당일도 420t 규모의 대청급 북한 경비정 2척이 어뢰정 3척의 호위를 받으며 어선 20척과 함께 북방한계선 남쪽 2km 해역까지 내려왔다.

우리 해군이 고속정 10척과 1200t급 초계함 2, 구조함 1척 등이 긴급 출동, 북한 경비정 선체를 직접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북한 함정을 NLL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이에 북한 경비정에 있던 북한군 10여 명이 갑판 위에 올라와 소총 사격으로 우리 해군에게 선제공격을 시작하며 수류탄 공격과 25mm 기관포를 고속정에 발사했다.

그러나 우리 초계함에서 발사한 76mm 함포 포탄 한 발이 북 어뢰정에 명중하여 40t 규모의 신흥급 북 어뢰정 1척이 불기둥에 휩싸이면서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완전히 침몰했고 나머지 북 경비정과 어뢰정도 우리 해군이 발사한 40mm 기관포에 의해 선체가 크게 파손됐으며 북한군은 20명 전사 , 30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도 속정 정장과 대원 등 2명이 경상을 입었고, 해군 고속정 기관실과 초계함 기관실 등이 일부 파손되거나 그로 인해 침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양측은 40분간 교전을 벌였다.

해전 직후 판문점에서 유엔군 사령부와 북한군 사이에서 장성급 회담에서 북한은 우리 군이 먼저 도발했다고 억지주장을 했고, NLL 문제도 거론됐다. 바로 북한의 속셈이 드러난 것이니 북방한계선 무력화를 기도하면서 정전체제의 문제점을 보여주면서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이 목표였던 것이다.

같은 해 73일 대한민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연평해전이라 명명했다.

해전 이후 북한은 군수뇌부를 대거 교체하고 복수를 다짐해 2002629일 제2차 연평해전을 일으켰다. 참수리 357정에 대한 북한 해군의 기습 공격으로 6명 전사, 18명 부상당했고, 357호는 침몰되었다. 교전은 31분 동안 계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북한도 30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했다. 우리측이 피해를 본 것은 김대중 정부의 교전수칙 때문이었다. 즉 '첫째, 북방한계선(NLL) 을 지켜라. 둘째, 우리가 먼저 발사하지 말라  셋째, 상대가 발사하면 교전 수칙에 따라 격퇴하라. 넷째, 전쟁으로 확대시키지 말라.'으로 두 번째가 문제가 많아 우리측 피해가 컸기에 김대중 정부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참수리357호(출처: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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