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는 1897년 고종의 칙령에 의해 자주적으로 개항한 항구도시이다.
1900년 1월 일본인 거류민 보호를 위해
일본 영사관이 개설되었다. 목포는 개항과 더불어 근대
도시로 재탄생하였다.
도시의 북촌 언덕배기 허름한 곳에 조선인들이 거주하였고
남촌의 아늑한 평지와 번화가에 일본인들이 거주했다.
그 일본인 거류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지대에
일본 영사관을 설치한 것이다.
1900년에 건립된 르네상스식 붉은 벽돌 건물인 일본영사관은 몇차례 용도변경은 있었지만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지금은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국가사적이다.
1907~8년의 의병대토벌 작전 때는 의병을 잡아다
영사관 앞에서 총칼로 찔러 죽인 만행의 장소이기도 하다.
영사관 뒷편에는 어둡고 칙칙한 방공호가 있었다.
조선인들을 강제로 데려다 노역을 시켰는데 그 긴 굴을
굴착기도 없이 자연암반을 파내 굴을 만들었다.
자주적으로 개항했지만 목포는 일제강점기 목면과
미곡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출구 역할을 했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은 그래서 더욱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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