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영남길

성남 판교의 항일의병운동기념탑

윤의사 2015. 6. 23. 11:22

대얼마 전 성남 판교에 항일의병운동 기념탑이 건립되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한제국 말기의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일본과 러시아, 청나라의 틈바구니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애쓴 애국지사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병운동이 일어난 것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 일본에 의해 강제로 군대가 해산된 정미7조약 등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운동은 을사늑약을 전후해 의병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알려지지 않은 의병장 중에는 성남 판교에도 있다. 바로 동천 남상목 선생이다.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면서 각종 전쟁 물품을 조달하기 위해 낙생면 하운산리의 산림을 마구잡이로 벌목하면서 낙생면과 언주면, 돌마면 등 3개 면민을 동원하고서도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노동력을 착취하였다. 이에 남상목 선생은 일본에 항거하다가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고 풀려났다.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날 무렵 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는 을사늑약을 체결하였다. 남상목 선생은 용인 용천곡에서 구식총 40자루, 신식 양총 10자루로 무장한 50여 명의 의병 부대를 일으켜 본인은 큰 칼을 차고 부대를 이끌었다. 경북 문경의 이강년 의병대장과 연합하여 문경 전투에 이어 충청도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경기도 안성 칠장사에 주둔하면서 전봉규·민병찬 등이 이끄는 부대와 연합하여 안성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당시의 의병부대는 비정규군으로 일본군과 싸우기에는 전술적, 군사무기로 열세에 놓여있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남상목 선생은 국내에서의 항일운동에 한계성을 깨닫고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가던 중 일본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선생은 1908114, 33세의 젊은 나이로 옥중에서 순국하였고,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으며, 2008년에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 공동으로 선정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되었다.

앞으로 숨겨진 애국지사들의 발굴에 힘을 쏟아야 하겠다.

영남길 1길이다.

 

 

 

항일의병운동기념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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