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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을 맞으면서

윤의사 2014. 12. 31. 09:10

이제 내일이면 을미년이다.

을미년, 곧 양띠해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청양(靑羊)의 해이다.

청양의 해에는 행복한 일과 좋은 일들로 가득 차리라 생각한다.

올해의 모든 악몽을 떨쳐 내야할 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할 것 같다.

대한민국을 진정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나온다면

정말로 대한민국의 앞날은 밝을 것이다.

 

을미년의 주요 일들을 살펴보자.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19년에 일어난 3.1독립만세운동이다.

일본의 무단식민지배에 항거한 비폭력·무저항 독립 운동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에서 비폭력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있을까? 동학농민혁명 때 30만 명의 우리나라 백성들이 희생되는 가운데 일본군은 겨우 1명의 희생자만 있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이때 동학군을 이끌던 전봉준장군은 희생을 하지 말 것을 농민군에게 당부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일본군은 한 명도 남김없이 죽여라라고 했으니...

을미년에 큰 기쁨 중 하나는 소배압이 이끈 10만의 거란 군사를 강감찬장군이 귀주에서 크게 물리친 귀주대첩이 일어난 해이다. 바로 현종 9(1018)이었다.

을미년의 가장 큰 슬픔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5년이다.

일본은 이노우에 공사를 비롯하여 조선인 우범선을 선두로 경복궁 건천궁을 침입하였다. 궁녀로 변신한 명성황후를 찾기위하여 닥치는 대로 궁녀들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옷을 벗겨 궁녀들의 여성을 검사하였다. 궁녀들 중 아이를 생산한 여성은 없기에 명성황후를 찾기위한 일본군의 만행이었던 것이다. 가장 치욕스러운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자인 고종은 자신의 부인과 백성이 당하는 아픔을 모른 채 하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하기에 급급하였다. 선두에 선 우범선은 일본으로 도망가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다. 그 아들 우장춘은 1950년에 우리나라로 왔다. ‘씨없는 수박을 가지고 왔다. 사람들은 씨없는 수박에는 열광하지만 실제적으로 우범선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나는 역사 시간에 꼭 학생들에게 우범선과 우장춘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우장춘을 추앙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많은 일들 가운데 중요한 일들만 적어보았다.

다시는 이러한 치욕스러운 역사가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통일도 하면서 국운을 키워야 한다. 2015년 을미년은 국운이 융성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명성황후 초상

 

명성황후숭모비

 

강감찬 장군 초상

 

                                       

    제암리 3.1운동 기념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