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관 이사종이 노래를 잘한다는 소문을 들은 황진이는 바로 행차했다.
사실 이사종도 황진이의 소문을 듣고 천수원 가에 말을 매어 놓고 홀로 노래를 부르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천수원 가에서 자리를 황진이 집으로 옮겨 함께 즐겼다.
며칠이 지난 후 황진이는 이사종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딱 6년만 같이 사는데, 3년은 선비님이 마련한 집에서 선비님이 생활비를 대어 살고,
그 뒤 3년은 우리 집에서 제가 생활비를 대어 살기로 해요”
이사종은 6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꼈지만 아쉬움 속에 약속을 하였다.
바로 황진이는 짐을 꾸려 이사종의 집으로 갔다.
마침내 두 사람은 우리나라 최초의 ‘계약 결혼’을 하게 되었다.
황진이의 계약 결혼은 흔히 남의 집 첩으로 들어가 더부살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분명한 계약 관계를 설정한 다음에야 그것이 성사되었으니
어쩌면 본부인이나 첩이 져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도 질 필요가 없었다.
가사도 따로 계집종을 두어 맡겼으므로 황진이는 고금에 없는 자유를 만끽하면서
꿈 같은 신혼 생활을 즐켰다.
신혼 생활을 망칠 만한 요소라곤 하나도 없었다.
시부모를 봉양할 의무도 없었고, 이웃집에서 돈을 꾸어올 일도 없었다.
남편을 위해 보따리 싸들고 고관대작을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두 사람의 계약 결혼은 금슬이 나빠질래야 나빠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사종과 꿈 같은 6년 계약 결혼을 마친
황진이는 울고불고 따라 오는 이사종을 뿌리치고 계약결혼을 마쳤다.
<이재운선생님의 "청사홍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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