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6월 7일)은 봉오동에서 일본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운 날이다.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일본군에 맞서 소부대를 이끌고 게릴라전으로 맞섰다.
그러나 홍범도장군은 대한독립군을 이끌고 일본군 제 19사단과 맞서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
홍범도는 험한 산악 지대인 갑산에서 자라 사냥을 하거나 광산에서 일하며 어렵게 살았다. 1907년에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물러나자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고, 홍범도도 분한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일본이 포수들의 총마저 거두어들이며 의병을 억누르려 하자, 홍범도는 차도선 등과 함께 산포대라는 이름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이어 북청 후치령을 중심으로 갑산, 사무, 혜산, 풍산 등에서 일본군을 싹 쓸어버렸다. 1910년에 나라를 완전히 일본에게 빼앗기자, 그는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을 기르는데 힘썼다. 그 이듬해 부하를 보내 함경북도 경원에 있는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해 큰 피해를 입혔다.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치다
1919년에 홍범도는 간도 대한국민회를 만들고, 그 소속 부대인 대한독립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200명의 독립군을 이끌고 국내로 들어와 혜산진, 갑산 등에서 일본군을 무찌른데 이어, 자성에서 3일 간의 전투 끝에 70여 명의 일본군을 죽이고 관청의 업무를 마비시켰다. 이후 최진동 부대와 합쳐 500여 명의 대부대로 국내 진입 작전을 벌였고, 1920년 6월에는 삼둔자 부근에서 일본군 100여 명을 죽였다.
그리고 일본군이 복수를 위해 곧장 대부대를 편성하고 독립군의 근거지인 봉오동으로 쳐들어오자, 홍범도는 7백여 명의 독립군을 이끌고 3일간 치열하게 싸워 일본 부대를 전멸시켰다. 이것이 봉오동 전투로, 그때까지 치른 독립군의 전투 가운데 가장 큰 승리였다. 홍범도는 그 해 10월 청산리 전투에서도 제1 연대장으로 참가해 김좌진 등과 함께 일본군을 크게 물리쳤다.
자유시 사변으로 독립군이 무장해제 당하다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패배를 거듭한 일본이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 계획을 세우고 계속 뒤쫓아오자, 홍범도는 모든 독립군을 모아 대한독립군단을 꾸리고 부총재가 되었다. 그 뒤에 러시아의 헤이허 자유시로 옮겨, 레닌 정부의 도움으로 고려 혁명 군관 학교를 세워 독립군의 힘을 키웠다.
그러나 1921년 러시아 공산당의 배반으로 독립군이 무장 해제되면서, 사살되거나 포로가 되는 등 이른바 ‘자유시 참변’을 겪게 되었다. 가까스로 북만주로 돌아와 독립 운동에 힘을 쏟던 홍범도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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