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님의 칼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윤의사 2012. 4. 27. 14:33

이재운선생님이 4월24일자 경인일보에 실은 칼럼입니다.

 

오늘날 한국인 신생아들에게서 안짱다리가 점차 사라지고, 광대뼈가 그다지 높게 솟지 않으며, 쌍꺼풀이 저절로 생기고 있다고 한다. 기마민족의 습성을 버린 지 1천년이 지났지만 이제야 몸이 그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핫바지 속에 숨어 있던 안짱다리를 잘 인식하지 못하다가 불과 오륙십년 전부터 시작된 반바지 등 노출 문화로 겨우 그걸 인식하고 길고 곧은 다리가 더 좋다는 생각을 완성시켰다. 그러자마자 신생아들에게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고 믿음이 간다면, 우리가 서둘러 버려야 할 원시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심리다.

채집, 수렵, 목축, 약탈, 전쟁의 상극시대에는 이 속담이 맞다.

일자리나 먹을거리, 관직과 품계(T/O)가 고정되어 있던 옛날에는 누군가 그 것을 차지하면 내 몫이 없어지는 게 맞다.


그래서 고대 인류는 남의 성공을 시기질투했으며, 이때 두뇌는 이 정보를 통증 회로에서 처리했다고 한다(사이언스 2012년 2월 13일자). 남의 성공은 실제로 나의 아픔이 된다는 뜻이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 이런 법칙은 철저히 통용되었다.

왕이나 정승이나 판서 자리는 고정되어 있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도 그렇다. 말단 9급까지 빈틈이 없다. 누군가 그 자리에 앉으면 내가 차지할 가능성이 원천봉쇄되는 것이므로 이미 지명되거나 선출된 사람을 어떻게든지 끌어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포지티브보다 네거티브, 추천서보다 투서가 성행하는 법이다. 인사청문회는 얼마나 치열한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민주주의가 가장 잘 정착되었다고 평가받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욕설, 폭력, 저질 언어가 난무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원시 두뇌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대 역사에서 왕권 경쟁자들이 왕이나 세자를 죽이고 나서 즉위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춘추전국시대 약 천년 사이에 일어났다가 사라진 나라는 무려 52개국이고, 피살된 왕과 제후만 36명이다. 왕자나 공자들이 서로 죽이고 죽은 건 하도 많아서 집계도 못한다.


그 전통이 유전자에 남아 있는지 지금도 대통령을 욕보여 자신이 그 자리에 올라서려는 무리들이 많고, 자고 나면 대통령 욕을 댓글로 써올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세력들이 적잖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 등 대통령 임기 말에 겪는 증후군도 이런 이치에서 나온다.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모두 사정이 비슷하고, 조선시대로 내려가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나올 대통령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겐 취임식만 영광이고 퇴임식은 장례식처럼 비참하다. 세종이나 광개토왕이 환생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이 유치한 시기와 질투는 진화과정에서 남이 잘되는 행위를 인식하고 처리하는 뇌 부위가 실제로는 고통을 인식하고 처리하는 부위와 같기 때문이다. 남이 잘되는 행위 자체가 실제 고통이다.


하지만 우리는 간접민주주의를 거쳐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가장 교육이 잘된 민족이고, IT 첨단 시대를 선도하는 민족이다. 이런 우리가 창 들고 멧돼지 쫓던 원시인들처럼 남 끌어내리고, 남 못되기만 학수고대하는 치졸한 문화를 끌어안고 살 수는 없다. 상극이 아니라 상생해야 한다. 내 옆사람이 성공해야 내게 이익이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인드라망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현대사회에서는 누군가의 실패가 도리어 나의 아픔이 될 수 있다. 또 인류는 레드오션만 추구하는 경쟁자 관계가 아니라 블루오션을 만들어내는 협력자여야 한다. 직업의 다양성, 문화의 다양성, 생각의 다양성이 상극시대를 밀어내고 상생시대를 열어줄 수 있다.


우리말 속담사전에서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는 항목이 사라지고 대신 '사촌이 땅 사면 내가 기쁘다'는 정서가 뿌리를 내릴 때 우린 신인류가 되고, 새로운 세계를 선도하는 지혜로운 민족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