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님의 칼럼

영감 정치를 끝내야 한다

윤의사 2012. 1. 15. 14:53

오늘 민주통합당은 당대표를 위한 선거를,

한나라당은 실추된 당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경인일보 11월 1일자 이재운선생님의 칼럼은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정치의 이정표가 될 듯 하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소위 '영감'들이 만들어낸 잘못된 쇼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정치를 이 '영감'들이 훼손했다고 본다. 누가 공중부양 쇼라도 할라치면 한나라당 영감들은 참새떼처럼 놀라 달아나고, 민주당 영감들은 카메라 프레임 밖으로 밀려날까봐 부지런히 그 뒤를 따라다닌다.

옳고 바른 일 해놓고도 말 한 마디 못하고, 잘못이 명백한데도 잘못이라고 지적하지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없이 국회에 출근하여 사건 기록 열람하듯 행정부가 제출한 문서다발이나 뒤적거리다 집에 가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 '영감'들이다. 영감이 뭔가. 일제시대에 생긴 호칭인데, 바로 판사 검사 등 법조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대법원이 나서서 권위적인 명칭이니 사용하지 말라고 못을 박기 전까지 사람들은 새파란 판검사를 "영감님! 영감님!" 하고 불렀다. 그렇게 불린 사람들이 지금 국회에 아주 많다.

이번 18대 국회에서 이 영감들은 천둥이 쳐도 꿈쩍 않고 벼락 쳐도 귀를 막았다. 국회 밖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턱 괴고 앉아 있기만 한다. 사법고시, 외무고시, 행정고시 3관왕을 하든, 고시 수석을 하든, 1등을 하든 배지를 단 영감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들은 결코 국민을 대신해 글러브를 끼지 않으며, 당연히 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동료들이 격론을 벌여도 연극무대 바라보듯 힐끗 둘러보고는 그만이다. 논쟁은 아랫것들이 하고 영감은 듣기만 한다. 논쟁이 가라앉아야만 슬슬 뒤적거리고 끄적끄적 살핀다. 막상 선거 현장에서는 숨 죽이고 있던 이들이 선거 끝나면 말이 많아지는 것도 이 버릇 때문일까.

원래 판검사는 지나간 사건, 과거를 잘 들춰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기 위해 현재, 미래, 앞날에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미래를 향해서는 한 발도 나아갈 수가 없다. 법이란 통일, 선진, 교류, 복지, 소통, 일자리, 민주주의, 지역화합, 인권, 이런 것하고는 크게 어울리는 개념이 아니다. 미래를 꿈꾸거나 기업을 일으켜 먹고 살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국민을 이끌고 앞장설 필요도, 서민들이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든지, 왜 싸우는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지 알 필요가 없다. 현실이 저만치 앞서가면 법은 줄의 맨 끝에서 수습하는 것이다. 국가나 사회가 누수되지 않도록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법은 현재의 최전선이나 미래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런 분들 중에서 야망을 가진 이들이 경력 적당히 챙긴 뒤 로펌으로 달려가고, 전관예우 특권까지 누리며 돈까지 두둑하게 챙긴 뒤 국회로 직행한 이들이 있다. 특권에서 특권으로 도어투도어(door to door)를 하고, 또 다른 특권으로 에스컬레이팅할 뿐 국회의사당이 법정이고, 의원석이 무슨 판사석이나 검사석이라도 되는 양 입술을 일자로 길게 물고 앉아 있다가 판결 내리듯이 버튼 누른다. 찬성 또는 반대.

나라 안팎이 광우병, FTA, 4대강, 국외 파병, 천안함 피격 등으로 요동쳐도 눈만 깜짝거린다. 유권자더러 변론이유서라도 가져오란 뜻인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막말이 들려도 누가 고발해 주기 전에는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서울시장 후보를 총으로 쏴 죽이는 그림이 나돌아도, 눈 앞에서 "위대한 동지 김정일 장군 만세"라고 외쳐도 묵묵부답 먼 산만 바라본다. 기소돼야 사건이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타난 20대, 30대, 40대의 욕구를 법률로는 이해 못한다. 이들은 정당이 왜 패배했는지 알 수 없는지도 모른다. 참여자가 아니라 이 사회의 관찰자요 국외자다. 역사의 그림자다.

이 영감들, 국회의원 안 해도 변호사로 얼마든지 떵떵거리며 잘살 수 있는 세상이다. 이들이 물러나야 현직 판검사들도 "세상이 바뀌었구나" 하고 정치판 눈치 안 보고 소신껏 일할 수 있다. 그간 사법부가 영감 국회의원들 영향권 내에 있었다는 의심은 충분히 받았다. 한국정치에서 '영감 정치'를 끝내야 한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진정 국민을 위해 앞장서고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짜 정치인, 서민 경제를 풀어나갈 전문가를 모셔야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