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님의 칼럼

갑작스런 행운은 어쨌든 수상하다

윤의사 2011. 12. 26. 15:54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던 청년 이원범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어가(御駕)에 실려 한양으로 길을 떠났다. 갯비린내나는 강화를 떠날 때만 해도 이 청년은 풍운의 꿈을 꾸었다. 왕자의 손자라는 가느다란 인연으로 그는 일국의 왕이 되기 위해 멀고 먼 한양까지 가는 것이다. 그는 하루아침에 조선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를 왕으로 만든 사람은 그가 진정 만인의 왕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 무슨 말이람? 그렇다.

그를 왕으로 만든 사람은 그가 ‘무능한 왕’이 되기를 바랐다.

그저 궁녀들에 푹 빠져 혼줄을 빼놓고 살아가기를 바랐다.

여자·먹을거리·오락·술·옥로주, 그까짓 거야 천병 만병인들 못갖다주랴.


꼴 베고 농사 짓던 그를 조선의 국왕으로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안동김씨 세도가들이었다. 그들은 국왕 헌종이 후사없이 죽자 가장 못난 후계자를 찾아다녔다. 조건은 단순했다. 무식할 것, 미련할 것, 겁많을 것, 소심할 것 말 잘 들을 것.


조건에 맞는 왕족이 하나 발견되었다. 글 공부를 하지도 않고, 오로지 가난한 살림에 농사일만 해온 사도세자를 증조부로 둔 농사꾼 이원범이었다.

안동김씨 세도가들은 즉시 어가를 보내 그를 한양으로 압송시켰다.


그러고는 궁녀들이 즐비한 궁에 던져넣었다.

술과 음식은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무진장으로 대주었다.

물론 국새는 안동김씨 세도 정치의 정점인 순원왕후의 손에 들려 있었다.

권력에 의해 간택된 이원범이 죽을 때까지 한 일이라고는 궁녀들 치마를 들추고 술 마시고 놀다가 아침저녁으로 순원왕후에게 불려가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안부를 묻는 일 뿐이었다.


국새 하나 마음대로 찍을 자유가 없었다.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렇게 조선왕조는 썩어갔다.


살아가다보면 갑작스런 행운이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옛날 옛날 먼옛날에, 정치판 기웃거리다 전재산을 잃고 체납자가 되어 고생하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막걸리 한 잔 마실 수 없는 처절한 형편에서 책만 읽으며 버텼다.


강화도에서 농사 짓던 이원범에 비해 나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그가 간절한 변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에 의해, 강화도령 불러들이듯이 대도시의 시장으로 간택되었다.


하지만 그의 방문 앞을 굳게 지키며 출입을 통제하고, 그의 휴대폰을 받아들고 전화마저 통제하는 안동김씨 같은 세도가가 생기고, 이 세도가는 그가 노래하고 하모니카 불며 실컷 놀아주기를 소망했다.


근무 시간이면 밖으로 내돌리며 동창회, 부녀회, 상갓집 같은 데나 데리고 다니고, 막걸리에 취하게 하고, 광대처럼 하모니카 불게 하고, 개그맨처럼 농담하고 웃고 떠들기를 부추긴다. 잘 한다고, 멋있다고, 한 곡 더 하라, 또 불어라 박수치며 낄낄거린다. 시정은 모를수록 더 좋다. 그래야 세도가가 안동김씨들처럼 마음껏 세도를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도가가 그의 차를 막고 그 앞에 세워도 2천백 명이나 되는 공무원은 누구 하나 뭐라지 못한다. 공무원들은 그가 노래하는 사이, 막걸리 마시는 사이 이 세도가에게 줄을 선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는 술에 취해 아부에 취해 자칭 80점은 되는 시장이라고 우기며 태평가를 부른다.


철종 이원범은 ‘성은이 망극’하다는 신하들의 넋두리에 홀려 조선이 망해가는 줄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범과 거의 같은 처지에서 상갓집 개로 숨어지내던 이하응은 그런 안동김씨 세력들에 맞서 끝내 세도가들을 두드려잡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철종 이원범이 될 것인가, 대원군 이하응이 될 것인가. 선택도 결과도 결국 그의 몫이다. 어쨌든 갑작스런 행운은 수상한 법이지만 대개 본인만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