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님의 칼럼

'호랑이와 소'가 결혼했다

윤의사 2011. 12. 4. 17:31

결혼은 근친이 아닌, 그래서 유전적으로 거리가 먼 사이에 하는 법이다.

실험에서도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거리가 먼 이성에게 끌린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유전 정보는 복잡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능력을 담고 있다. 특정 질병을 잘 극복한다거나 지역 환경에 맞는 우수한 신체 기능, 일조량에 따른 피부빛깔, 높낮이가 다른 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쌍꺼풀, 안짱다리, 시력 등이 그러한 유전 정보에서 나오는 것이다. 진화의 기본 법칙이다.

그런데 너무 먼 사이에 결혼하다 보면 문화 차이가 너무 커서 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장점이 있는 만큼 위험성도 따르는 것이다.

그 극단적인 예가 '호랑이와 소의 결혼'으로 비유된다.

호랑이와 소가 서로 최선을 다해 잘해주기로 약속하고 결혼했다.

결혼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소는 싱싱한 풀을 뜯어다가 이걸 사랑하는 호랑이에게 주려고 애를 썼다.

"이거 참 맛있는 풀이야."

하지만 싱싱한 풀을 본 호랑이는 기뻐하기는커녕 귀찮아했다.

먹는 시늉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기어이 한 입도 삼키지 못했다.

이에 질세라 호랑이도 먹음직한 사슴 고기를 구해다 소에게 주었다.

"이거 정말 맛있는 고기야."

소는 성의를 다해 고기를 먹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정말 한 점도 넘기지 못했다. 이렇게 호랑이와 소는 상대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날이 갈수록 사랑이 식어갔다. 대체 어떻게 해야 배우자가 좋아할까.

사람과 사람간에도 이런 일이 매우 흔하게, 자주 일어난다.

사람들은 흔히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와 생각이 같을 거라고 착각한다.

사람이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서로 다른 게 없다면 굳이 남녀로 나뉠 필요도 없고, 남의 집안과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 대원군 이하응처럼 문 닫아걸고 쇄국할 수도 있고, 나라 망했다고 두문동에 들어가 숨어 산 고려 선비들처럼 살 수도 있고, 몰몬교도들처럼 불모지 솔트레이크로 들어가 집단생활할 수도 있다. 끊임없는 '교류와 소통'으로 만물의 영장이 된 인류가 이처럼 자기만의 성을 쌓고,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며 사는 일도 가능한 것이 세상이다.

호랑이와 소가 자기 생각만 고집한다면 결국 따로 살며 만나지 않는 게 피차 편하다. 하지만 호랑이가 소를 인정하고, 소가 호랑이를 인정한다면 결과는 달라진다.

고대 인류는 혼자 사는 것보다, 가족끼리만 사는 것보다 부족이 모여 집단화하는 것이 생존과 발전에 유리하다고 보고 '사회'라는 걸 만들어냈다.

'인류 사회'는 상대를 배려하고 인정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고대 인류가 모두 자기 주장만 고집했다면 사회는 형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인류는 사회를 만들고 나아가 시장을 만들어 교류와 소통을 이어온 끝에 오늘과 같은 문명을 일궈냈다. 반면 교류와 소통을 거부하고, 사회나 시장을 거부한 침팬지는 아직 아프리카 밀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미 FTA가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 인준되었다. 2012년 1월 1일부터 발효된다. 광화문에서 '매국노'를 지목하는 시위가 그치지 않고 있다.

한미 FTA는 2007년 4월 2일 노무현 정부와 부시 정부간에 타결되었다. 2007년 6월 30일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서명했다. 그로부터 4년 4개월의 시간이 지나면서 양국의 새 대통령 이명박, 오바마 두 분이 재협상을 해온 끝에 미국이 2011년 10월 13일, 한국이 2011년 10월 22일 비준동의안을 각각 처리했다.

한미FTA가 호랑이가 소를 배려하고, 소가 호랑이를 배려하는 상생의 결합이 될지, 아니면 호랑이가 소에게 고기만 먹으라고 강요하고, 소가 호랑이에게 풀만 먹으라고 강요하는 상극의 결합이 될지 몇 년 안에 판가름이 난다. 과연 저 광화문에서 들리는 말처럼 대한민국이 미국에 팔려가는 매국이 될지, 혹은 FTA협상파 주장대로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더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될지 머지않아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