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님의 칼럼

지도자의 예측 능력

윤의사 2011. 12. 8. 09:11

국가는 수천 년이라는 시간의 강을 항해하는 거대한 집단이다. 하루도 같은 곳을 지나가지 않고, 해마다 다른 곳을 향해 흘러간다. 가다보면 급류를 만날 수도 있고, 폭풍우를 만날 수도 있고, 드물지만 폭포를 만날 수도 있다. 지도자는 국가를 이끌고 변화무쌍한 시간의 강을 항해하는, 즉 미래로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앞길을 내다보고, 미래를 예측한 다음 나아가야 할 길을 정하여 집단을 이끌어가야만 한다. 결코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도리어 눈을 더 부릅뜨고 스스로 초병이 되고, 항해사가 되고, 항법사가 돼야 한다. 집단의 수장이 되어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없으면 그 집단을 패망의 길로 이끄는 가장 나쁜 지도자가 된다. 타이타닉의 선장처럼 자신을 믿고 탄 승객들을 차디찬 북극의 바다에 수장시킬 수도 있다. 대원군과 그의 아들 고종 이재황은 조선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결국 도도하게 밀려들던 서구 열강의 힘을 과소평가하여 기어이 왕조를 빼앗겼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하고, 군부 내 비밀조직인 하나회를 뿌리 뽑아 군정 가능성을 완전 종식시켰지만 환난을 예측하지 못해 수많은 사람을 고통 속에 빠뜨렸다.


물론 미래를 예측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미국 대통령을 지내면서 2차대전, 태평양전쟁, 육이오전쟁 같은 국가흥망의 위기를 맞았던 해리 트루먼은 "어떤 초등학생의 사후 분석도 가장 위대한 정치가의 사전 예측보다 낫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1억 옥쇄를 부르짖으며 버티는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하여 민간인 수십만 명을 죽이는 대신 미군 희생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전쟁을 종식시킬 것인가, 미군 희생을 무릅쓰며 지루한 재래전으로 싸울 것인가 고민했다. 그는 결국 민간인을 포함한 일본인 수십만 명을 희생시키기로 결심하고 핵폭탄 투하 명령을 내렸다. 육이오전쟁 때는 만주에 핵폭탄을 투하하여 중공군의 개입을 차단할 것인가, 차단이 가능할 것인가 예측하는 문제로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와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역사는 정해졌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민주당 정권이 폈던 햇볕정책이 옳았느냐, 한나라당이 펴는 압박정책이 옳을 것이냐 논쟁하는 것과 같다. 미래 예측은 정권을 담당한 지도자가 판단하고 결정할 몫이지만, 국가와 국민은 도리없이 그 지도자가 정한 미래 속으로 이끌려간다.


2000년대에 이르러 인간 사회의 발전 속도는 눈이 부실 정도로 빨라졌다. 그런만큼 세상이 급변하고 있는데 이 변화에 대응하지는 않고 '어제처럼, 그때처럼, 예년처럼' 잦아들기만 바란 사람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집트 독재자 무바라크도 그러다 물러갔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 외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정작 이를 느끼지 못하는 지도자들이 많다. 정해진 임기가 지나면 보통 사람이 되는 정치인들조차 뻔한 미래를 읽지 못한다. 잇따른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한 말로는 그들에게 애초 미래 예측 능력이 없었거나, 아니면 변화를 보지 못하고 저 편한대로 안주한 탓이리라. 개인이 예측을 잘못해서 당하는 손해는 개인에게 국한되지만, 지도자가 엉뚱한 예측으로 현실을 오판하면 그 조직, 집단, 국가가 동시에 실패한다. 심지어 민족이 없어지기도 한다. 하늘은 보고 싶은만큼 보여주고, 알고 싶어하는 만큼 알려준다. 따라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자신의 예측 능력을 기르고, 아울러 자신의 예측이 현실로 나타나도록 만드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 지도자의 능력이다.


해리 트루먼은 그의 자서전에서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호랑이 등에 오르는 일과 같다. 계속 달리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한 순간이라도 안심해선 안 된다. 대통령이 되어 보지 않은 사람은 대통령의 무한 책임에 대하여 이해할 수가 없다. 대통령에게 돌아오지 않는 책임은 아무것도 없다. 최측근 참모나 가족도 대통령이 어떤 자리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역사적 선례를 연구했다. 모든 문제는 과거에 그 뿌리가 있다. 나는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결정을 내리려 했다. 내가 왜 역사를 읽고, 또 읽었느냐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