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님의 칼럼

정몽주는 만들어진 영웅인가?

윤의사 2012. 5. 23. 10:20

5월 22일 경인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이성계가 고려 왕실을 뒤엎은 뒤 새 왕조를 세우려고 하자 고려국 수문하시중 정몽주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임 향한 일편단심'이라는 단심가로 대항했다. 이방원은 그런 정몽주를 선지교에서 철퇴로 때려죽이고 그 시신을 찢어 노상에 방치했다.


정몽주는 역적으로 낙인찍히고 태조 이성계, 정종 이방과 시기에도 여전히 역적이자 간신이었다. 그런 정몽주가 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경기도 용인에서 충절(忠節)의 상징으로 부활하여 올해로 열 번째 '포은문화제'가 열렸다.


고려 역적 정몽주는 어쩌다가 조선 충신 정몽주가 되었을까.


정몽주의 충성과 절개는 무엇이며, '임 향한 일편단심'의 그 임은 누구일까? 그 임이 백성이라면 영웅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보고 나는 물러설 수 있다. 그러나 정몽주의 임은 백성이 아닌 공양왕 개인일 뿐이다. 그는 신돈과 더불어 정치를 했으며 훗날 그 자신의 입으로 신돈의 자식이라고 폄하된 우왕·창왕을 세우고, 또 이성계 일파와 협력하여 두 임금을 끌어내리고 공양왕을 올리면서 '폐가입진((廢假立眞)'의 논리를 주창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의 충성과 절개란 도무지 누구를 향한 건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역시 유교에서 거론되는 이상적인 왕, 그러니까 용이나 봉황같은 상상세계의 존재를 그리워한 것이던가. 아니면 정몽주 자신을 수문하시중 즉 국무총리급으로 격상시켜 대우해준 공양왕이 그 임인가.


정몽주는 선지교 사건 이후 오래도록 간신역적으로 남아 있다가 그에게 살인명령을 내린 이방원에 의해 갑자기 신원되면서 충신으로 돌변했다. 그가 죽은 선지교는 선죽교로 바뀌고, 붉은색을 띠는 축석은 정몽주의 피가 묻은 돌로 꾸며지는 등 꾸준한 스토리텔링이 입혀지고, 무엇보다 간신 역적이라며 쉬쉬하던 그를 성리학의 대가이자 충절의 상징이라며 서원 13개가 나서서 제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사실 이성계의 쿠데타 동지이자 조선의 설계자인 정도전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이방원의 고육지책이었다. 정도전은 명실상부한 조선 개국의 유일무이한 일등공신이자 조선국을 설계한 국부(國父)지만 이방원에게는 한낱 정적일 뿐이고, 비록 자신이 간신 역적이라고 규정한 정몽주라도 정도전의 신권을 억누를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다.

즉 신하는 신하일 뿐 오로지 국왕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미 왕위를 차지했으므로 이제는 왕에게 무조건 충성해줄 신하가 필요하지 개혁을 외치거나 임금을 가르치는 정도전 같은 신하는 필요치 않았다. 그 결과 '태조 이성계가 인정한 충신 정도전'은 간신이 되고, '이방원 자신이 규정한 간신 정몽주'는 충신이 된 것이다.


이러한 영웅 만들기는 현대 독재자 박정희도 따라한 흔적이 있다. 이순신이 그러하고 정몽주가 그러하다. 박정희는 자신이 독재자이지만 국민들의 무조건 충성을 요구하기 위해 두 사람을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이순신은 선조의 핍박을 받다 전투 중 죽은 인물이다. 임진왜란에서 15일만에 서울을 함락당한 무능하기 짝이 없는 선조 이균의 사형선고와 백의종군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겨우 남은 열두 척 배로 일본 수군을 물리친 영웅이 된 것이다. 나라가 비록 그 사람을 핍박하더라도 결국 나라에 충성하라는 의미 아닌가. 독재자 박정희는 철퇴에 맞아죽으면서도 일편단심을 외치는 정몽주, 국왕으로부터 사형 대신 백의종군이라는 모욕을 받고도 결국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주는 이순신같은 충신이 간절히 필요했던 것이다.


이방원은 정몽주를 빛내기 위해 정작 조선 왕조를 최고의 신권 국가, 철학의 나라로 설계한 정도전을 노비 출신의 간신으로 폄하시키고, 박정희는 이순신을 빛내기 위해 임진왜란의 선무일등공신 3인(권율, 이순신, 원균) 중 한 사람인 원균을 교활한 간신으로 격하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이처럼 독재자들은 아웃포커스 기법을 즐긴다.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와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시시때때로 영웅을 만들거나 멋대로 역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는 위정자들 입맛대로 분칠이 될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