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 119호인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은 고구려와 관련된 글이 새겨져 있는 불상이면서도 옛 신라 지역인 경상남도 의령지방에서 발견되었다. 문화재청 소개에 다르면 다음과 같다.
광배(光背) 뒷면에 남아있는 글에 따르면 평양 동사(東寺)의 승려들이 천불(千佛)을 만들어 세상에 널리 퍼뜨리고자 만들었던 불상 가운데 29번째 것으로, 전체 높이는 16.2㎝이다. 머리는 삼국시대 불상으로는 유례가 드물게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다. 얼굴은 비교적 작은데, 살이 빠져 길쭉한 가운데 미소를 풍기고 있다. 오른손은 앞으로 들어 손바닥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허리 부분에서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게 하여 아래로 내리고 있다. 왼손의 세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 모습은 삼국시대 불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모습이다. 유난히 두꺼운 옷에 싸인 신체는 굴곡의 표현이 없지만, 전체적인 체구와 약간 보이는 어깨의 골격 등에서 강인한 힘을 느끼게 한다. 새의 날개깃 모양의 옷자락은 좌우로 힘차게 뻗쳐 있는데, 날카롭고 힘있는 모습이 중국 북위 이래의 양식을 보여준다. 불상과 함께 붙여서 만든 광배는 앞면에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듯한 불꽃무늬가 선으로 새겨져 있다. 광배의 일부분이 손상되었으나 도금까지도 완전히 남아 있는 희귀한 불상으로, 광배 뒷면에 남아있는 글과 강렬한 느낌을 주는 표현 방법 등으로 볼 때 6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고구려 불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이 휴대용 불상이었다고 추정한다. 이러한 불상은 대개 천불씩 모셔놓았다. 천불의 불상을 스님들이 몸에 모시고 다니면서 백성들에게 불교를 포교하고, 즉석에서 법회를 하는데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추정을 바탕으로 고구려의 불상인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이 신라지역인 의령에서 발견되었던 것이다. 삼국시대이었지만 불교를 포교하는데는 국경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천불을 만드는 불사를 하면서 사람들은 많은 복을 구했을 것이다. 복을 구하는 길에는 불교를 널리 포교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천불로 만들어진 불상이 스님들의 포교 수단이면서 백성들을 교화하는 대용 불상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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