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삼남길

이산 정조대왕의 원찰을 찾아서

윤의사 2007. 9. 30. 09:22

가장 가까운 곳이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모르는 곳이 바로 용주사와 융건릉이다. 이곳 출신이라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용주사와 융건능으로 소풍을 수없이 갔다. 그때만 해도 왜 이곳으로만 가야하나 지겹다는 생각도 하였지만 지금은 행복한 지루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에 있는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만들어진 갈양사인데, 병자호란 때 불에 타 절이 없어졌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은 것이다. 정조대왕은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설법을 듣고 이에 크게 감동하여 부친인 사도세자의 넋을 달래기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하면서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묘를 천하제일의 명당이라 하는 화산으로 옮겨와 현릉원(뒤에 융릉으로 승격)이라 하고, 용주사를 지은 것이다. '용주사'라는 이름은 낙성식날 저녁에 정조가 꿈을 꾸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불리워졌으며, 효심의 근본 사찰로서 불심과 효심이 한데 어우러지게 되었다. 용주사가 다른 사찰 건축과 다른 점은 입구부터 남다르다. 궁궐이나 서원, 사당 등에서나 볼 수 있는 삼문 형태와 삼문 좌우로 늘어져 있는 행랑채도 궁궐 건축에서나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용주사의 중심 건축물인 대웅전으로 가보면 더욱 사도세자의 원찰임을 알게 해준다. 대웅전에 오르는 계단의 소맷돌 문양이 다른 사원 건축에서는 연꽃이나 당초문인데 비하여 이곳은 삼태극과 구름, 모란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대웅전의 현판을 정조대왕이 직접 쓸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효행박물관에는 정조가 직접 쓴 <어제봉불기복게>라는 책이 있는데 정조가 화산 용주사의 내력을 간략히 말한 뒤 부처님을 모신내력과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글이다. 임금이 직접 쓴 책이라서 가장자리를 청동으로 제본하였으며, 연꽃 무늬로 표지를 꾸몄다. 용주사 천보루에 앞쪽에 홍재루(弘濟樓)라는 편액이 붙어있는데, 이는 정조대왕의 호로서 널리 대중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정조임금의 호이다. 대웅보전 왼쪽에 위치한 효성전에는 사도세자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내부 벽면은 '부모은중경'으로 도배되어 있다. 용주사에는 정조대왕이 하사한 목판과 정조의 아들인 순조가 하사한 동판과 석판 부모은중경이 보관되어 있다.

 

 

용주사 대웅전

 

 

 

용주사 다층석탑

 

 

용주사 천보루

 

 

200살이 넘은 용주사 회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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