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음4월8일 오늘의 역사, 한성부의 인구

윤의사 2025. 4. 8. 19:13

2024년 12월 기준으로 서울시의 인구는 933만 1,828명 이다.

한때는 1,000만을 넘었지만 인구가 감소하고 신도시의 개발로 인구가 감소하였다.

그래도 1,000만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은 조선시대 이래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서울시의 인구가 처음 보인 것인 <세종실록> 40권, 세종 10년(1428) 윤4월 8일 기사이다.

 

<세종실록> 40권, 세종 10년(1428) 윤4월 8일 

한성부가 계하기를,

"병오년의 호적[版籍]이 지금에 이르러 드디어 경성(京城) 5부의 호수(戶數)가 1만 6천 9백 21호, 인구는 10만 3천 3백 28인이며, 관령(管領)이 46인을 이루었습니다. 성밖 10리의 지역에는 호수가 1천 6백 1호, 인구가 6천 44인, 관령이 15명입니다. 그 휴양(休養)하며 생취(生聚)하는 모습이 흥성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비옵건대 주(周)나라·당(唐)나라의 제도에 따라 5부의 각방(各坊)에 5가를 비(比)로 하여 장(長) 1인을 두며, 1백 가를 이(里)로 하여 정 1인을 두고, 성 밖의 각 면(面)은 30가를 이(里)로 하여 권농(勸農) 1인을 두며, 매 1이(里)마다 모두 표지(標識)를 세워 분별하고, 모든 가구(家口)의 다과(多寡)와 귀천(貴賤)·노유(老幼), 모든 세금과 부역의 부과와 면제, 제사·혼인·상사(喪事)·농상(農桑)의 권장(勸奬)과 징계 등을, 매번 명령을 시행할 때를 당하여 집집마다 가서 보고 호마다 깨우쳐서 제때에 봉양하게 하여, 도망한 자로 하여금 숨을 곳을 없게 하고, 옮겨 간 자로 하여금 용납할 곳이 없게 하여, 서로 보호하고 서로 지켜서 예속(禮俗)을 이루게 하소서."

하니, 이조에 내려 의정부·제조(諸曹)와 더불어 함께 의논하라고 명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금의 5가의 장은 곧 비장(比長)이며, 관령(管領)은 곧 이정(里正)인 것이니, 각방의 관령 46인도 오히려 사람을 선택하여 임명하기가 어려운데, 만약 1만 6천 9백 21호를 매 1백 호마다 이정 한 사람씩 둔다면 1백 23인을 더 두어야 하게 되니, 어떻게 채워 임명하겠습니까. 또 성밖의 각 이에는 이미 관령이 있어서 권농(勸農)의 임무까지 겸해 맡고 있으니, 반드시 다시 〈권농을〉 설치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땅히 예전대로 그냥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 10년(1428)의 서울의 인구는 10만3천3백28명이다.

1만6천9백21가구이므로 가구당 5명 정도의 가족이 있는 셈이다.

지금은 가구당 3명 정도이니 약600년 전에 비하면 2명 정도가 줄어든 셈이다.

인구는 예나 지금이나 국력에서 중요하다.

육아에 지치지 않고, 학교를 보내는데도 걱정이 없다면 약 600년 전의 가구당 5인의 구성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