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는 조선 명종, 선조 때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며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며 유학을 발전시켜 나간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일뿐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조선을 새롭게 바꾸려고 노력한 탁월한 정치 개혁가였다.
저서로는 <성학집요>, <격몽요결>, <수학집주개본>, <중용토석>, <경연일기> 등이 있다.
자는 숙헌, 호는 율곡 또는 석담, 시호는 문성이다.
이이는 중종 32년(1537, 음 1536년 12월 26일) 이원수와 신사임당 사이에서 4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이이는 세 살 무렵에 시를 지을 정도로 머리가 총명했고, 어머니 신사임당의 교육 덕분에 단정하고 예의가 발랐다.
또한 무려 9차례나 장원급제하여 이름을 날렸으며, 호조 좌랑을 시작으로 대사간, 이조 판서, 병조 판서, 황해도 관찰사 같은 중앙과 지방의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쳤다. 그리고 이러한 폭넓은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정 전반에 걸친 개혁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실제 생활에 필요한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다
이이는 학문의 가치는 무엇보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법칙이나 방법을 알려 주는 데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가정과 사회 안에서 실천해야 할 도덕을 가르치는 윤리 교육, 사람들 저마다의 특성을 가르치는 개성 교육 등을
강조하였다. 이이의 사상은 뒤에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을 주장한 실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개혁을 통해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펴 나가다
이이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안을 내놓으며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를 펴 나갔다.
예컨대 그는 세금을 공평하게 걷자고 주장하고, 지방 특산물을 바치는 대신 쌀이나 베, 돈을 내게 해 번거로움을 줄인
대동법을 실시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사창을 설치하였다.
또한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일본의 침입에 대비해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다
일본은 틈만 보이면 조선에 쳐들어와 괴롭히곤 하였다. 따라서 이이는 일본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의 침입에 대비해 미리미리 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선조 임금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10만의 군사를 기르는 한편, 군량미를 비축하고 재정을 튼튼히 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유성룡을 비롯한 다른 관리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조선은 아무런 준비도 못한 채 왜구의 침입을 맞아 7년간이나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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