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1월15일 오늘의 역사, 김만철씨 일가 탈북

윤의사 2025. 1. 15. 19:25

김만철씨의 부친은 청진의과대학교 교수를 지낼 정도로 북한에서 엘리트였으며, 이로 인해 김만철씨도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김만철씨의 막내동생이 구소련에 유학을 갔을 당시 김정일 후계 계승을 위한 주체사상 주입에 전력을 기울이던 때였다. 막내동생은 북한 체제에 대해 비판을 했고, 이를 문제삼아 막내동생은 소련에서 강제 귀국당한 지 한달 만에 총살당했다. 이로 인해 부친은 의대 교수에서 쫓겨나고, 김만철씨도 파직되었다.

이때부터 김만철씨는 북한 체제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다.

김만철씨 일가 11명은  1987년 1월15일 새벽 1시.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의 바닷가에선 군의관 시절 눈여겨 본 어로감시선을 훔쳐 북한군의 삼엄한 경비망을 피해 68세 노인부터 11세 어린이 등 김만철씨 일가 11명이 ‘따뜻한 남쪽 나라’인 인도네시아로 탈출을 시도했다. 

무작정 동쪽으로 향하던 배가 엔진 고장으로 표류하다가 20일 오후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에 발견되어 쓰루가항으로 갔다. 일본에서 조사를 받으며 "대한민국으로 가고 싶다"고 했으나, 당시 통역을 하던 사람이 조총련계이기에 북한에서도 소식을 듣게 되었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각기 자국으로의 송환을 요구하니 일본은 외교 문제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대만으로 추방했다. 대만에서는 김만철씨의 뜻을 존중해 한국으로 오니, 북한을 떠난 지 24일 만인 1987년 2월 8일 특별전세기편 으로 서울에 도착, 귀순하니 첫 가족단위 탈북이 되었다.

김만철씨는 사업을 하다 실패하여 어려운 생활을 했으나, 자식들은 잘 커서 대한민국에서 자신들의 꿈을 펼쳐나간다고 한다.

지금도 북한은 지옥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김정은의 호주머니를 두둑히 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이곳에 왜 왔는지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다.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이런 나라를  동경하고 비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으로 딱할 뿐이다. 북한의 김일성 일가의 악행을 알려 북한에 자유화 물결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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