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1월16일 오늘의 역사, 미소공동회의 예비 회담 개최

윤의사 2025. 1. 16. 19:52

1946년 1월 16일 미소공동회의 예비회담이 열렸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38도선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미국이, 북쪽에는 소련이 각각 차지하였다.

미소는 한반도에 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공동회의를 3월부터 개최하기로 하면서 1월 16일 예비회담을 가졌다.

이에 앞서 1945년 12월 16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 영국, 소련의 3국이 모인 회의에서는 

 

1.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 임시정부를 건설한다.
2. 임시정부 수립을 돕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한다.
3. 미국과 소련, 영국, 중국은 임시정부 수립을 돕기 위해 최대 5년간의 신탁통치를 실시한다.
4. 2주일 이내에 미·소 사령부의 대표회의를 개최한다.

를 합의하였다.
합의문의 내용대로 인하여 1946년 1월 16일 서울 덕수궁에서 미소공동회의 예비회담이 개최되었다.
예비회담 중 미 대표가 소련에 제안한 것은

1. 한국으로부터의 중요물자 반출,
2. 38도선의 재래의 도경계선에 의존한 변경
3. 방송망의 일원화와 양지구를 통하여 신문의 자유로운 배포를 가능케 하는 문제
4. 양지구간의 전화통신 재개
5. 화폐의 통일
등 이었다..
그러나 소련측은 이런 문제는 남·북간에 통일정권만 수립되면 해결된다는 입장을 표하면서 신탁통치에 대한 정리를 주장했다. 미소의 대립은 회의 기간 내내 지속되었으며, 남한 내에서도 반탁과 찬탁으로  민족진영과 사회진영 간의 갈등 등으로 인하여 조선에 ‘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원조’하고 ‘1개월 이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립’하는 것에 합의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이튿날  소련대표단은 북한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