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산온<尹山溫 : 미국명 조지 새논 매큔(George Shannon McCune)>은 미국 북장로회 교육선교사로 1873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서 태어나 미주리주파크 대학 졸업하고, 1905년 9월에 아내 헬렌과 함께 한국의 평양에 들어왔다.
1905년은 일제가 한국의 침략을 본격화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해로 평양에서 당시 숭실학교 교장이었던 윌리엄 베어드와 함께 한국학생들을 가르쳤다. 한국인들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윤산온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바꾸었다. '윤(尹)'은 '맥윤(McCune)'에서 온 것이고, '산온'은 그의 미들네임인 '섀넌'에서 온 것이었다.
1909년부터 1921년까지 신성중학교 교장으로 있었는데, 1911년 ‘105인 사건’ 을 빌미로 일제가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의 독립운동을 탄압하자 관련 한국인들의 보호에 앞장서면서 일제의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일제의 부당한 대우를 미국 선교 본부에 바로 보고하면서 일제의 무단통치의 실상을 해외 언론이 보도하게 해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노력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 경찰이 만세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체포하지 못하게 하면서 미국 ‘컨티넨트’ 잡지에 일제의 3.1운동 탄압을 규탄하는 글을 썼다. 또한 1920년 광복군총영 학생 박치의가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재판을 받을 때 변호를 하였다.
1920년 한국을 방문한 미국 의원단에 대한독립승인신청서를 전달하니, 일제는 그를 '극단적 배일자'로 지목해 감시를 강화하면서 추방형을 내려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인재양성을 해야 한국이 일제로부터 벗어난다는 생각으로 1928년 한국으로 와서 다시 숭실대학의 교장이 되어 대학 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1936년 일제가 신사 참배를 강요하자 1월 18일
“양심적으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학생들에게 시킬 수 없다”
라고 하며 거부해 결국 교장직에서 파면당하고 추방당했다. 했다.
이 사건은 한국인의 일제에 대해 항거한 상징적 사건이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평가받고 있다.
미국으로 돌아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비판하는 강연과 신문에 글을 게재하며 비판을 하다가 1941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윤산온의 공을 인정해 1963년 맥큔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나 후손의 존재를 몰라 2022년에 손자 조지 블레어 맥큔(George Blair McCune)을 찾아 전수되었다. 정말 다행이다.
우리나라의 독립과 한국인을 보호하려던 외국인을 대우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직도 찾지 못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사진: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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