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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청주 동래부사 송상현 충렬사(忠烈祠)

윤의사 2015. 1. 6. 09:57

 

 충렬사(충청북도 기념물 제16호)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산105

 

 

홍살문

 

 

충렬묘

 

 

송상현(宋象賢, 1551~1592) 선생의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자는 덕구(德求),

호는 천곡(泉谷), 국가의 위난을 죽음으로 지켜 시호를 충렬(忠烈)이라 하였다.

충렬공은 1576년(선조 9)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친 후

 1591년(선조 24) 동래부사에 발령을 받아 근무하게 되었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은 부산진을 함락하고

14일에 동래성을 공격하여 항복을 권유하였으나 고향에 있는 부친께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은혜보다 중요하다(君臣義重 父子恩輕)"는

시를 남기고 끝까지 싸우다 15일 충정을 지키기 위하여 돌아가셨다.

이에 왜군의 장군도 그 절개와 의리에 감탄하여 송상현의 시신을

동문 밖에 장사 지내고 나무로 묘표를 세워 주었다고 한다.

 

 

천곡기념관(泉谷紀念館)

 

 

충렬묘 좌측으로 신축한 천곡기념관과 사당이 있다.

 

 

사당 외삼문

충렬공 송상현 선생의 위패를 모신 이 사당은 광해군 2년(1610)에 지어

제향하기 시작 하였고 그후 여러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다가

1980년 크게 중수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충렬사

 

 

송상현 선생 영정 사진

 

묘는  원래 동래(부산)에 있던 것을 1595년(선조 28)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묘역에는 상석과 문인석, 망주석, 장명등, 묘표  등 석물이 갖추어져 있으며,

 신도비는 묘소 아래 진입로 왼편에 있는데, 효종 10년(1659)에 세운 것이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썼다고 한다.

 

 

 사당 외삼문 앞에서 앞을 바라본 모습

 

 

 

 

 

 

 

 

군신의중부자은경(君臣義重父子恩輕)

"군신의 의가 중하니 부모의 은혜는 오히려 가볍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해도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은 큰 불효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忠)을 위해 효(孝)를 가볍다" 한 것은  부모에 대한 효의 정신도

중요하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한 충의 정신이 더욱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송상현 충렬사 정화기념비

 

 

입구에 광촌노인 복지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멀리서 바라본 충렬사 전경

충렬사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입구에 송상현 정려각이 있다.

 

 

충렬공 송상현 정려각

 

 

충렬공 송상현과 소실  한소사 김섬. 이소사 정려각

 

 

열녀 한소사 김섬 정려

 

 

열녀 이소사 정려

 

 

국한문 번역문 신도비 취지문

 

 

효부 연일정씨 정려각

 

 

성균생원 송명휘의 처 연일정씨 정려

 

 

효열녀 밀양박씨 정려각

 

 

성균진사 송현기의 처 밀양박씨 정려

 

 

 

 

청주시에서 천곡 선생의 애국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묘소가 있는 이곳에

2001년 인근 부지를 확장 정비하여 천곡기념관과 사당을 신축하였으며 주변을 공원화 하였다.

그리고 문화해설사께서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셔서 좋았다.

 

 

 

 

 

 

 

 

 

 

출처 : A Bird Of Paradise
글쓴이 : 극락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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