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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광주 충장공 김덕령 장군 사우 충장사(忠壯祠) 및 묘역

윤의사 2015. 1. 6. 09:55

 

 

충장공 김덕령 장군 사우 충장사(忠壯祠) 및 묘역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충장사 입구

 

 

입구에 있는 연지

 

 

홍살문

 

 

충장사 안내도와 안내문

 

 

충장사 전경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義兵將)

 충장공 김덕령(忠壯公 金德齡, 1568~1596) 장군의 사우(祠宇) 및 묘역(墓域)이다.

 

 

외삼문인 충용문(忠勇門)

 

 

충용문을 들어서면 익호문이 바라다 보인다.

 

 

동재

 

 

서재

 

 

내삼문인 익호문(翼虎門)

 

 

사당 충장사(忠壯祠)

 

김덕령 장군의 위패와 영정이 봉안된 곳으로,

건물은 정면 3칸으로 일출목 이익공.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내부에는 김덕령 장군의 영정사진이 봉안되어 있다.

 

 

충용장군 김공덕령 은륜비문

 

 

충용장군 김공덕령 은륜비(忠勇將軍  金公德齡 恩綸碑)

 

 

비각 옆에 나있는 협문으로 나가면 영모당이 있고,

영모당에서 조금만 가면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영모당

 

 

묘역 전경

 

중앙 능선 위에 김덕룡 장군 부모(붕변)묘, 중간이 증조부(문선)묘

제일 아래쪽이 김덕령 장군 묘이다.

 

 

김덕령 장군 묘소로 가는 길

 

 

충용장군  시 충장김공 덕령지묘, 정경부인 흥양이씨 합장묘

 

김덕령(金德齡, 1567~1596) 장군은 조선 선조(宣祖) 원년(1568)에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충효리)  옛이름 석저촌(石底村)에서 김붕변(金鵬變)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자라면서 당대석학 우계 성혼(牛溪 成渾) 선생에게 수학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담양(潭陽) 지방에서 의병 5000을 모집하여 출정하였다.

이에 당시 전주에 내려와 있던 광해군(光海君)으로부터 익호장군(翼虎將軍)의 군호(軍號)를 받았다.

선조 28년(1595) 고성(固城) 지방에 상륙하려는 왜군을 격퇴하여 선조로부터 충용군(忠勇軍)이란 군호를 받았다.

이후 장문포에서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과 수륙 연합전에 참가한 것을 비롯하여 진해(鎭海), 고성 지방을 방어하였다.

또한 의병장 곽재우(郭再祐) 장군과 여러차례에 걸쳐 왜군을 무찌르니 장군의 위명(威名)은 날로 높아갔다.

선조 29년(1596) 이몽학(李夢鶴)의 반란을 토벌하였으나 그와 내통한

충청도 순찰사(忠淸道 巡察使)의 무고로 투옥되어 옥사하였다.

김덕령 장군이 억울하게 죽자 그를 소중히 여겼던 남도의 사람들은 모두 원통하게

여기고 가슴 아파하였다. 특히 동생 덕보는 세상일에 뜻을 버리고 은둔생활을 하였다.

부인 흥양이씨(興陽李氏)는 정유재란 때 담양 추월산에서 일본군에게

쫓기다 절벽으로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

 

 

그후 현종(顯宗) 2년(1661) 장군의 억울함이 신원되어 관직이 복구되었다. 그리고 현종 9년(1668)에는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숙종(肅宗) 6년(1680)에는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정조(正祖) 13년(1789)에는 의정부 좌찬성(議政附 左贊成)에 추증(追贈) 되었다.

정조 12년(1788)에는 장군의 드높은 충효(忠孝)를 기리고자 사당(祠堂)을 건립하여

배향하는 한편 충장공(忠壯公)의 시호(諡號)를 내렸다.

그리고 장군의 태어난 마을 석저촌을 충효리로 바꾸도록 하고 표리비를

내려 이를 널리 알리도록 하였다.

 

 

두기의 묘표석

 

숙종 4년(1678) 광주의 벽진서원(碧津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이듬해 의열사(義烈祠)로 사액되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의열사는 철거되고,  1975년 2월 이곳에 충장사를 지어 배향하였다.

또한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광주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 그의 시호를 붙여 1947년부터 '충장로'라 부르고 있다.

 

 

묘소 앞쪽 가운데에 장명등이 서 있고

 

 

 무인석과 산양 석물 망주석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모습이다.

 

 

무인석의 얼굴이 무섭지 않고 인자해 보였다.

 

 

걸어오면서 바라다 보이는 충장사 뒷모습

 

 

담장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소나무숲이 보이고

 

 

충장공 김덕령 장군 유물관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유물관에는 김덕령 장군의 유품인 중요민속자료 제111호로 지정된 의복과

 장군의 묘에서 출토된 관곽,  친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시신을 모셨던  관곽(棺槨)

 

 

전 김덕령장군 친필(傳 金德齡將軍 親筆)

김덕령장군이 썼다고 전하는 편지

 

 

충장공유사(忠壯公遺事)

1791년 정조임금의 명으로 김덕령장군 관련 글을 모아  편찬한 책

 

 

모시철릭

 

 

백무명겹직령

 

 

무명솜저고리

 

 

누비는 순서

 

 

1단계

가장자리를 직선으로 박음질하고 4등분할 수 있는 간격을 두고 계속 박음질한다.

 

 

2단계

1단계에서 만들어진 평행선을 2등분하여 박음질함으로써 선의 간격을 반으로 줄인다.

 

 

3단계

2단계에서 좁아진 선의 가운데를 박음질하여 완성한다.

 

 

 의병장 김덕령 생애

 

 

 김덕령장군 의복

 

우리나라의 전통의상은 섬유가 쉽게 해지거나 재료의 한계 때문에 문헌과

그림 등의 간접적인 재료를 통해 그 모양을 추측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출토복식이 늘어남에 따라 실물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입었던 여러가지

옷의  모양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출토복식이란 옛사람의 무덤을 옮길 때

 무덤속에서 시신과 함께 발견되는 옷가지를 말한다.

이것은 시신에 입혔던 수의와 평소에 본인이나 가족이 입었던 옷을

 관속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넣은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출토복식은 옷자체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장례제도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또한 무덤이 아닌 복장유물에서 옷이 발견되는 사례도 있다.

 

김덕령장군 의복도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1974년 11월 19일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발견되었다. 이장할 때 고고학이나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발견 당시의 상황은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발견된 옷가지는 저고리 1점, 바지 2점, 철릭 2점, 직령(두루마기의 일종) 4점,

버선 1컬레,  이불 1채 등 11점과 10여점 이상의 명주와 무명 옷감이 있다.

이 가운데 저고리 1점, 찰릭 1점, 직령 3점만 보존상태가 좋고,

나머지는 좋지 않아 원래의 모양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저고리와 직령의 소매의 길이가 길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옷들은 장군이 평소에

 입던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조선중기의 사람들이 입었던 옷의 모양과 정교한

바느질에서 당시 여인들의 바느질 솜씨와 정성을 엿볼 수 있다.

 

 

김덕령장군 활동시기의 의복

 

 

김덕령장군 관련 유적

 

 주검동(鑄劒洞,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21호)

무등산 원효계곡에 있는 제철유적으로 김덕령 장군이 의병을

일으킬 때 무기를 만들었던 곳이라 전한다.

 

김덕령장군 부인 흥양이씨 순절지

담양 추월산 보리암 근처의 절벽으로 정유재란 때 김덕령 장군의 부인

 흥양이씨가 일본군에게 쫓기다 몸을 던져 정절을 지킨 곳이다.

 

충효리 정려비각(忠孝里 旌閭碑閣,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4호)

충효동 마을 앞에 있는 비각으로 김덕령장군과 부인, 형제의 충효열을 기려

정조임금이 마을을 충효의 마을이라 정하고 이를 표시한 비이다.

 

풍암정(풍암정,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5호)

무등산 원효계곡에 있는 정자로 김덕령장군이 억울하게 죽자

동생 덕보가 애통히 여겨 이 정자를 짓고 은거하였다.

 

취가정(醉歌亭)

무등산 원효계곡 하류에 있는 정자로,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장군이

 권필의 꿈에 나타나 시를 주고받았다는 사연을 담고 있다.

 

충장로(忠壯路)

광주의 가장 중심가로서, 김덕령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그의 시호를 붙여 1947년부터 충장로라 부르고 있다.

 

 

 

충장공 김덕령 장군  신도비

 

 장군의 훌륭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2004년 2월 23일에 신도비를 세웠다.

 

 

충장사 건립공적비 

 

 

헌사비

 

 

목이 너무 말라서 충장사 관리사무소에 들어가 물을 얻어 먹었다.

 

 

입구에 해설사의 집이 있으니 해설을 들으면 더욱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충장사에서 출발하여 샘바위- 풍암정-도요지-김덕령생가-호수생태원-환벽당-

가사문학관까지(5.6km) 약 2시간이 소요되는 옛길 3구간을

가족과 혹은 좋은사람과 더불어 함께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출처 : A Bird Of Paradise
글쓴이 : 극락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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