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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박물관

윤의사 2013. 3. 1. 11:22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에서 내려 5호 출구를 나오면 웬지 엄숙한 느낌이 든다.

바로 50미터 정도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박물관 때문이다.

오늘 3.1절 94주년을 맞아 서대문형무소박물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대문형무소박물관은 헤이그특사파견으로 고종이 퇴위하고 군대 해산에 대항해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 등 일본의 침략에서 벗어나고자 국권회복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저지하고자 한국인들을 마구 잡아들인 일본은 대규모 수용시설이 필요하여

1908년 10월 21일 서대문 현저동에 대규모 근대식 감옥을 만들었다.

원래 경성감옥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전옥서는 종로에 있었다.

영은문 자리에 들어선 독립문이 바로 보이는 이곳에 지은 것은

아마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꺾으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곳은 삼일운동 직후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어 숨을 거둔 지하 옥사, 감시탑과 고문실,

사형장, 옥사 7개 동 등에는 죽음으로 조국을 지켰던 선열들의 얼이 오늘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된 한반도에선 거센 독립 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감옥이 더 필요한 일본은 마포 공덕동에 새로운 감옥을 짓고 ‘경성감옥’이라 부르고,

서대문에 있었던 경성감옥을 서대문감옥으로 바꾸었다.

1919년에 일어난 3·1독립만세운동으로 더 많은 시설이 필요했던

일본은 서대문형무소를 수용인원 3,000여 명 규모의 대규모 감옥으로 만들었다.

이곳은 유관순열사를 비롯한 4만 여 명의 독립투사들이 투옥되었으며,

그 중 400명이 독립을 그리며 순국하였다.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되찾은 후 서대문형무소는 민주화투쟁의 산실이었다.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이 2차 대전이후 독립한 나라 중 유일하게 경제와 민주국가를 동시에 이룬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서대문형무소는 1987년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1998년 11월에 박물관으로 개관되었다.

 

서대문형무소박물관 전경

 

외부와 차단하고 탈옥을 막기위한 어마어마한 높이의 울타리 벽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을사늑약문서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합한 경술국치 문서

 

독립투사를 고문했던 의자

 

 

독립투사들을 위협하거나 실제 사용된 칼

 

독립투사들의 탈주를 막고 행동을 제한하기 위한 족쇄

 

독방에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을 완전히 격리시키기 위해 외부에 설치된 용변처리 구명

 

사형집행대를 지켜보는 미류나무, 아마도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