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역사뉴스

석가탑의 해체

윤의사 2012. 10. 1. 19:36

9월 27일 오후

석가탑 해체작업 착수보고회가 열렸다.

이 날 착수보고회에서는 석가탑의 가장 꼭대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상륜부의 보주(탑 꼭대기의 구슬 모양 장식) 해체 시연이 있었다.

 

 

1966년 가을 석가탑은 도굴당할 뻔했다.

다행히 1층과 3층을 파손한 도굴범들은

새벽에 울리는 불국사의 종소리에 놀라 달아났다.

그리고 탑 2층에 있던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이 때 탑 속에서 함께 발견된 시루떡처럼 뭉쳐진

'묵서지편(墨書紙片)'이 있었다.

110쪽에 이르는 낱장으로 분리해 해독하는 데 무려 43년이 걸렸다.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묵서지에 고려 때인 1024년, 1038년

두 차례에 걸쳐 석가탑이 보수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발표했다.

1038년 붕괴 직전까지 갔을 땐

불국사 승려들이 시주를 받아 보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전면적인 보수작업은 석가탑이 완성한 이래 1270년만이다.

 

 

석가탑은 '그림자 없는 탑'이라 하여 ‘무영탑(無影塔)’이라고 불린다.

탑을 만드는 기술이 부족한 신라에서 백제의 탑기술자인 아사달을 초대했다.

시간이 흐르자, 백제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아사녀가 탑 건설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탑 건설 현장에서는 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여자는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였다.

대신 탑이 완성되면 가까운 연못에 비친다고 하였다.

이에 아사녀는 탑이 빨리 완성되는 모습을 비치기를 지극 정성 빌었지만,

탑은 끝내 비치지 않았다.

아사녀는 상심 끝에 연못에 몸을 던졌다.

탑이 완성된 후 아내의 죽음을 안 아사달은 연못 옆 바위에

아내의 얼굴을 새기고 자신도 몸을 던졌다고 한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정성이 깃들어진 석가탑은

일본의 문화재 약탈과 도굴범의 도굴에도 살아

1270년을 굳건하게 지켜왔다.

 

 

아마도 다른 탑들처럼 기단부에 1270년 전의 타임캡슐이 열려

혹시나 불상 등의 보물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해체전의 석가탑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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