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군사상 중요한 지역에는 읍성을 설치하였다.
특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읍성을 건설하였다.
읍성의 중요성은 건설하고 나서 5년 안에 무너지면 죄를 삼았으며,
견고히 쌓으면 상을 주는 규정까지 마련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읍성에는 옹성(甕城 : 출입문을 공격하는 적을 제압하기 위해서 문의 주위를 둘러 쌓은 작은 성), 치성(雉城 : 성벽에 근접한 적을 성곽 위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성벽 바깥에 내모꼴로 튀어나오게 쌓은 시설), 해자(垓字 : 성벽의 둘레에 판 도랑) 등을 중앙 정부에서 갖추도록 하였다.
현존하는 읍성으로는 정조때에 건설된 화성이 대표적이며,
이밖에 충청남도 서산의 해미읍성, 전라북도 고창의 모양성, 전라남도 순천의 낙안읍성, 부산의 동래성, 충청남도의 홍주성, 경상남도의 진주성 등이 있다.
일단 외적이 침입하면 고을 백성들이 이곳으로 피난하게 하였으므로
대피 인원의 생활을 위한 활동 공간과 충분한 식수원,
그리고 수령이 고을일을 돌보는 행정 기관인 동헌(東軒),
수령과 가족이 생활하던 내아(內衙),
지방에 공무상 출장오는 관리나 사신들이 숙박할 수 있는 객사(客舍),
향리들의 집무처인 작청(作廳),
지방 양반들이 수령을 보좌하면서 향리들을 감시하는 향청(鄕廳)이 갖추어져 있다.
조선 중기 이후 대외 정세가 안정되어감에 따라 읍성은
군사 시설로서의 기능보다는 지방 행정기능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고창읍성(모양성:한 바퀴를 돌면 3년을 무병장수한다고 전한다)
낙안읍성(앞부분이 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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