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문화사전/역사뉴스

잊혀진 해군명장 시득

윤의사 2010. 4. 27. 09:09

천안함의 침몰로 해군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대양 해군을 꿈꾸며 1만4천톤급의 독도함까지 거느린 대한민국 해군이 어뢰로 추정되는 물체에 의해 공격을 받아 배가 두동강이 나고 46명의 숭고한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그들의 극락왕생을 빌면서 역사속의 해군 명장을 만나보자.

우리가 해군 명장 하면 신라 말기의 장보고나 임진왜란 중의 이순신장군을 떠올린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장수가 신라통일기의 시득이었다. 시득은 당나라가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한 최후의 전투를 벌인 금강 입구의 기벌포에서 설인귀를 만나 싸운 명장이었다. 설인귀는 경주로 향하기 위해 금강 입구의 기벌포로 2만의 해군을 이끌고 진군하였다. 이때 설인귀를 막기위한 신라군은 고작 병선 100척의 시득이었다. 설인귀를 맞은 시득은 첫 싸움에서 패배하였다. 이 패배를 교훈삼아 시득은 전술을 바꾸었다. 바로 지형지물을 이용한 게릴라전이었다. 게릴라전을 통해 설인귀가 이끈 당나라군과 22번을 싸워 모두 승리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이때 전사한 당나라 군사는 4000명이었다. 해전이었으므로 4000명이라는 것은 바닷속에 수장된 당나라군을 합친다면 그 이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17등급의 신라 벼슬 중 8등급의 사찬에 지나지 않던 시득은 이름을 올릴 수가 없었다. 신라 통일에 대한 모든 공은 김유신과 김춘추, 문무왕과 김인문에게 돌아갔다. 이제 시득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그리하여 해군 용사들에게 사기를 북돋아주어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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