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근,현대사 영웅만들기

신채호

윤의사 2009. 10. 28. 09:05

일제가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는데 반대해, 민족주의 사관을 세워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힘썼다. 한국사의 여러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발전시켜 근대 역사학의 기틀을 다졌다. 호는 단재이다.

 

신채호는 묘지기가 살던 허름한 집을 빌려 살 정도로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웠는데, 열 살 때 벌써 <통감>과 사서삼경을 읽고, 시와 글에도 뛰어난 신동으로 이름이 났다. 신채호는 열아홉 살에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독립협회 활동을 하였는데, 이 때문에 잠시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그 뒤 고향에 내려와 직접 세운 산동학원을 비롯한 여러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계몽 활동을 폈다.

 

언론을 무기로 삼아 일제에 대항하다

신채호는 1905년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갈 뜻을 버리고 <황성신문>의 기자가 되었다.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논설위원)이 되어 날카로운 논설을 통해 정부를 비판하고 일본의 침략에 맞섰다. 1907년에는 안창호 등과 신민회를 만들고, 이 무렵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을 돕는 논설을 자주 실었다. 1910년 나라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긴 뒤, 신채호는 나라 밖에 독립 운동 기지를 세우는 일에 나섰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광복회를 만드는 한편, <권업신문>의 주필로 활약하였다. 그 뒤로 상하이, 베이징 등을 다니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세우는 일에 참여하였으나, 미국에 기대 독립을 얻으려는 이승만을 비판하며 임시 정부를 떠났다. 그 뒤 신채호는 스스로 무력을 키워야만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고 독립군 통합에 힘쓰는 한편, 일본의 주요 인사를 암살하기 위한 ‘의열단’을 구성하였다. 신채호는 무정부주의로까지 발전하였는데, 1928년에 민족 잡지인 <탈환>을 발간하였다.

 

한국 근대 역사학의 기초를 굳건히 세우다

신채호는 한평생 한국사 연구를 통해 민족 의식과 독립 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대한매일신보>에 역사와 관련된 논설을 많이 싣고, <최영전>, <을지문덕전>, <이순신전>과 같은 민족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펴내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으로 망명한 뒤에는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지를 다니면서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데 힘써,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문화사> 등을 펴냈다. 신채호는 이처럼 일제가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데 반대해 민족주의 사관을 바로 잡았고, 한국 역사학의 여러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근대적인 사학으로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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