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한자 발음, 그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생긴 혼란
한자 도입으로 우리말 어휘가 풍부해졌지만, 한편으로 순우리말이 크게 위축됐다. 이제 와서 한자어를 몰아낼 수도 없고, 한자 표기가 거의 사라져 가는 지금 ‘의미 없는 발음’만 남은 한자어를 적극적으로 쓸 수도 없는 난감한 지경에 이르렀다. 한자를 적지 않은 ‘한자어 독음’은 당황스럽고 낯설다. 어떤 단체에서 내세우는 ‘초아(超我)의 봉사’란 게 뭔지, 법전에 나오는 몽리(蒙利: 이익을 얻음), 저치(貯置: 저축하여 둠), 결궤(決潰: 둑 따위가 물에 밀려 터져 무너짐), 호창(呼唱: 큰소리로 부름), 삭도(索道: 밧줄)를 외우는 고시생들은 무슨 비밀 전문을 보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선조들은 이두(吏讀), 반절(反切), 향명(鄕名), 각운(脚韻), 향찰(鄕札), 구결(口訣) 등 갖은 방법으로 우리말을 표기하려 노력했지만, 우리말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보니 결과적으로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훈민정음이 공용문자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왕조가 망할 지경이 돼서였다. 지금 쓰이는 순우리말 동식물 어휘 대부분은 이두를 이용한 향명으로 살아남았다. 향명을 적는 기법 중에 훈독자(訓讀字)가 있는데 한자의 뜻을 이용해 순우리말을 적는다. 즉, 味를 ‘맛’으로, 月을 ‘달’로 읽는 것이다(草 → 풀, 母 → 어미, 紛 → 가루, 皮 → 껍질, 畓 → 논, 太 → 콩). 한자어를 받아들일 때부터 중국 발음 대신 우리말로 한자를 읽었더라면 큰 혼란 없이 우리말을 지켜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경우에 따라 음독(音讀)을 하기도 하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면 훈독(訓讀)을 해 우리말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朝日이라고 써놓고 아침해라고 읽는 것이 훈독이요, ‘조일’이라고 읽는 것은 음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향명 외에는 훈독을 하지 않고 오로지 음독만 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말의 원형을 찾아보기가 대단히 어렵다. 훈독을 했더라면 오늘날 우리말 어휘는 굉장히 풍부해졌을지도 모른다. 鹽田이라고 적어놓고 ‘염전’이라고 읽으면 중국인들도 알아듣지 못하고, 우리말과도 전혀 상관없는 발음이 된다. 한자의 발음가가 한자 전래 시기의 중국음과 비슷할지는 몰라도 오늘날의 중국인들 발음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굳이 수천 년 전의 한자 발음을 우리가 지킬 이유가 없다. 그러니 쓰기는 鹽田이라고 해도 읽을 때 ‘소금밭’이라고 하면 어린 학생들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한자어를 읽을 때는 우리 뜻으로 읽고, 어쩔 수 없을 때에는 원래대로 발음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면 우리말과 한문의 문법이 달라 말 순서가 전혀 다른 어휘, 완전히 한자어 발음으로 굳어진 어휘 등을 빼도 절반쯤은 우리말로 한자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예를 들어보면 그것이 훈독자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쓰일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大田 → 큰밭, 家畜 → 집짐승, 櫻花 → 앵두꽃, 田畓 → 논밭, 國語 → 나라말, 大路 → 큰길, 鷄卵 → 달걀(닭알) 힘들어도 노력해야 한다. 고사리, 솜다리 같은 우리 꽃, 우리 식물이 향명이란 이름으로 살아남은 게 바로 이런 훈독 덕이었다. 한자어를 훈독하는 운동이 일어나 우리말이 우리말다워지는 날이 어서 오기 바란다.
이재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 대표 저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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