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선생님/이재운선생의 우리말 이야기

21. 한의학 등 생활 속에서 온 말

윤의사 2009. 5. 23. 14:30

21. 한의학 등 생활 속에서 온 말

 

 말은 생활 속에서 새로 생겨나고, 불편하거나 필요가 없어지면 사라진다. 20년 전 소설을 읽어보면 당시에는 별 거부감 없이 쓰이던 한자어가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걸 볼 수 있다. 그 이전 작품은 더하다. 상당히 많은 한자어가 우리말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말이 아주 많다. 예를 들자면 긴장감이 넘치는 노름판, 부엌 같은 공간은 새로운 말이 만들어지기 아주 좋은 곳이다.

노름판에서 온 말 : 땡잡다, 개평, 아삼륙, 꼽사리 끼다, 바가지 쓰다, 말짱 황이다, 삥땅, 삼팔따라지, 왔다

벼슬아치 때문에 나온 말 : 거덜나다, 감투, 알나리깔나리, 상피붙다, 고과(考課), 수청, 영감, 좌천, 떼어 놓은 당상

부엌에서 생긴 말 : (사람이) 싱겁다, 맵다, 짜다, 비비다

형벌에서 온 말 : 도무지, 경치다, 육시랄, 넨장맞을, 젠장할, 오살할 놈

 

다음의 사례는 한의학에서 생겨난 말들이다.

간(肝)이 붓다: 간(肝)은 한의학에서 목기(木氣)에 해당한다. 이는 곧 일을 새로 추진하거나 이끌어가는 추진력을 나타낸다.

‘간 큰 놈’이란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간담(肝膽)이 서늘하다: ‘간담’(肝膽)은 간과 쓸개로, 한의학 이론을 따르면 깊이 간직한 ‘마음속’이라는 뜻이다.

배알이 꼬이다: 배알은 창자의 순우리말이다. 준말로 ‘밸’이다. 곧 창자가 꼬여서 속이 아프다, 편치 않다는 뜻이다.

부아가 나: 부아는 ‘폐’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화가 나면 숨이 가빠지고, 그러면 심호흡으로 가슴이 부풀어오르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비위(脾胃) 맞추다: 소화액을 분비하는 비장(脾臟)과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위장(胃臟)을 합쳐서 비위라고 한다. 비위를 맞춘다는 것은 곧 속에서 어떤 음식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비위 좋다’고도 쓴다.

생때같다: ‘몸이 튼튼하고 아무 병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신물 나다: 과식을 했거나 먹은 음식이 체했을 때 넘어오는 시큼한 물을 신물이라 한다. 한 번 체한 음식은 잘 먹게 되지 않게 되는 데서 생긴 말이다.

쓸개 빠진 놈: 담(膽)이라고도 하는 쓸개는 한의학에서 대담한 용기를 내는 장부로 알려져 있다. ‘대담하다’, ‘담대하다’로도 쓰인다. 담이 크다는 것은 용기가 있다는 뜻이고, 쓸개가 빠졌다는 것은 용기가 없이 비겁하고 줏대가 없다는 말이다.

염병(染病)할: 염병은 장티푸스다. 고열에 시달리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장티푸스는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염병할 놈’은 ‘염병을 앓아서 죽을 놈’이란 뜻이다.

학을 떼다: 모기가 옮기는 여름 전염병인 말라리아를 ‘학질’이라고 한다. 학을 뗀다는 것은 죽을 뻔했던 ‘학질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환장(換腸)하다: 환장(換腸)은 ‘환심장’(換心腸)이 준 말로서, 마음과 내장이 다 바뀌어 뒤집힐 정도라는 뜻이다.

 

             이재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 대표 저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