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교사들의 수난시대라고 한다. 학부모가 흉기를 가지고 와서 담임 교사를 위협하는가 하면, 자신의 자식에게 체벌을 가했다고 하여 경찰에 고발하기도 한다. 나아가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과 지역 사회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은 오로지 상급학교를 진학하는데 관심이 있기에 진정한 인성(人性)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다. 또한 학부모들은 자식이 한, 두 명이다보니 과보호가 이루어져 자식 사랑이 지나친 면도 있다. 교육이 흔들리는 원인 중 다른 하나는 바로 ‘선생(先生)’의 남발이다. 요즈음 웬만한 사람을 선생이라고 부른다. 그러다 보니 학교 교육 현장에 있는 선생이 낮추어지는 경향이 있다. 옛날에는 선생이라는 호칭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했다. 선생은 성현의 도를 전하고(傳道), 학업을 가르쳐 주며(授業), 의혹을 풀어 주는(解惑) 사람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최초로 ‘선생(先生)’으로 불려진 인물로는 ‘강수선생(强首先生)’과 ‘백결선생(百結先生)’이다. 강수는 외교 문서에 능한 6두품 출신의 학자로 임금의 자문에 응했던 사람이기에 붙여진 것이요, 백결은 검소하고 따뜻한 인품을 지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려 중기이후부터 ‘선생’이란 칭호가 많이 사용되었다. 학문이 뛰어나거나 절개가 있는 사람, 과거 시험의 고시관인 좌주 및 자신에게 학문을 가르쳐준 스승 등을 가리켰다. 조선시대에는 선생이라고 부르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고려말기에 도입된 성리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 및 생활에 깊숙이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즉 학문과 인덕을 두루 갖춘 사람이 아니면 함부로 ‘선생’이라 칭할 수가 없었다. 문묘에 배향된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선생이란 호칭이 자기에게는 과분하다" 하여 묘비를 ‘퇴도만은 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로 할 것을 유언으로 남기기도 했으며, 실제로 묘비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일본의 식민지를 겪으면서 선생이라는 호칭이 두루 사용되면서 원래의 의미가 퇴색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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