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대사는 나라를 구하라는 서산대사의 글을 받고 승병을 모아 서산대사와 합류했다. 그리고 승병들을 이끌고 명나라 군사를 도와 평양성을 되찾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서울 근교에서도 일본군을 물리치는 등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에는 그가 거느린 의승군(義僧軍) 정예부대 1000여 명이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근거지인 울산의 서생포(西生浦)를 포위하고, 수 차례에 걸쳐 적진을 드나들며 적정(敵情)을 탐지하고 평화회담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때 그는 왜장 가토 기요마사를 찾아가 담판을 벌였다. 가토 기요마사는 사명대사를 위협할 양으로 무기를 든 군사를 주위에 도열시켰다. 그러나 사명대사가 전혀 개의치 않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자 가토 기요마사는 거만한 태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