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11월15일 오늘의 역사, 다수확 품종 통일벼 탄생

윤의사 2024. 11. 15. 20:01

대한민국에서 5월과 6월이 되면 먹을 것이 없어 보릿고개라고 불렀다.

보리가 수확될 때까지 먹을 것을 찾아 산이고 들로 다녔다.

소나무 속껍질을 삶아서 부드럽게 해서 먹던가, 아니면 진흙을 물에 타서 가라앉는 가루를 짓이겨 쪄서 먹기도 하였다. 그런데 나무껍질이나 흙은 인간의 위가 소화시킬 수 없는 성분이 많은 것이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심각하게 변비가 생긴다든지, 돌덩이처럼 딱딱한 똥이 나와 항문이 찢어져 피가 나오기도 하였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라고 한 것이다.

우선 먹는 것이 너무 급해 박정희 전대통령은 벼 품종 개발에 나섰다. 1964년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에 서울농대 허문회 교수를 비롯한 연구팀을 다수확 벼품종 개발의 특명을 내려 연수를 보냈다.

허문회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연구팀은 한국인이 먹는 자포니카에 다수확 품종인 인디카를 교배했다. 인디카는 흔히 말하는 안남미였다. 밥에 끈기가 부족해 밥을 숟가락으로 뜨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품종이다. 일본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볍씨를 개발했으나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연구팀은 19721115667번의 실험에 자포니카와 인디카의 교배종에다 다시 인디카를 교배해 번식력을 회복시키는 방법을 사용해 성공을 이루었다. 667번의 실험으로 드디어 성공한 볍씨라고 해서 ‘IR667’로 불리웠다. 이것이 기적의 볍씨인 통일벼인 것이다.

개발된 통일벼를 김제평야에 심은 후 가을에 수확해 낱알 갯수를 세었다. 기존 벼는 이삭마다 80~90알인데 통일벼는 140알이 나왔다. 드디어 다수확 품종이 탄생된 것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너무 좋아서 그날 막걸리를 마시고 크게 취했다는 설() 있을 정도였다.

농촌진흥청에서는 IR667로 부를 수 없어 신품종 이름짓기를 국민들에게 공모했다. 2만 건 이상 응모했으며, ‘경제로서 부흥하면 북한을 압도할 수 있다는 의미로 통일벼라는 이름이 당선되었다. 이후 인디카·자포니카 하이브리드또는 한국형 인디카대신 쌀 품종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생태형인 점을 강조해 통일계(tongil type) 품종이라고 명명됐다.

통일벼는 기존의 품종보다 1.5배 정도 생산이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인이 먹는 쌀은 자포니카로 밥의 찰기가 있는데, 통일벼는 인디카 계통이라 찰기가 없어 맛이 뒤쳐진다는 것이다. 또한 벼의 키가 자포니카보다 작아 땔감으로 쓰기에도, 새끼나 가마니를 만들 때도, 소를 키우는 농가에서는 먹이로 여물을 쓰는데도 많은 양이 나오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까닭에 농가에서 처음에 반대했지만, 나라에서 통일벼를 생산하면 모두 수매한다고 하니(이중곡가제) 대부분의 농가에서 재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76년에는 쌀의 자급자족을 이루었으며, 1977년에는 쌀 생산량이 4.94(일본, 4.78)으로 세계 최고의 기록을 세우며 쌀이 남아돌아 그동안 금지했던 쌀막걸리를 허가하였다. 이로써 한국인은 통일벼 덕분에 보릿고개에서 벗어나 배고픔을 해결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매된 통일벼는 주로 관청 구내식당이나 군인들에게 제공되기도 하였다.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의 소식을 들은 북한에서는 통일벼 볍씨에 탐을 내고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단사건처럼 통일볍씨를 가져가려는 일도 있었다. 북한에서 어렵게 구한 통일벼를 심었지만 추운 날씨 탓에 통일벼 재배는 실패하였다.

지금이야 한국인들이 먹는 쌀의 양이 1970년대의 1/3수준으로 줄어 통일벼를 재배하지 않지만, 통일벼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인기를 얻었다. 이 소식을 들은 가나에서도, 마침내 아프리카 대륙 대부분 국가에서 통일벼를 이용한 다수확 품종의 재배로 기아 해방을 외치고 있으니 한국에서 녹색혁명으로 세상을 바꾼 통일벼는 여전히 죽지 않고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벼 재배법 책자(출처:나라기록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