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윤의사 2024. 6. 30. 14:07

역사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가 마가렛 미첼(Margaret Munnerlyn Mitchell)1900118,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오빠가 얘기해주는 남북전쟁에 대한 일화를 들으며 남부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남북 전쟁 당시의 인물에 대한 전기를 보면서 전쟁의 배경과 사회 상황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수집하며 자랐다.

1914년 애틀랜타의 워싱턴신학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장편 소설 네 여자, 단편소설 어린 동생등을 저술하였다. 이후 의대에 진학하라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북부에 있는 명문 여자 대학인 스미스대학에 입학했으나, 재학 중 스페인 독감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1918년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였다. 그후 애틀랜타 저널에 입사하여 뛰어난 인터뷰 기사로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직장 동료였던 존 마시와 결혼했다.

1925년 발목 부상으로 직장을 그만두면서 어린 시절부터 수집해놓은 남북전쟁과 관련된 자료 및 어른들로부터 들은 일화를 바탕으로 3년간의 집필 끝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탈고했지만 출판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 6년간 보관하였다. 1936년 맥밀란 출판사에 의해 630일 출간되어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년 비비안 리, 게이블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었다. 미국판 토지로 런닝타임이 3시간 42분의 대작 영화였다.

그녀는 벼락스타가 되면서 부담감이 커지자 이후 작품을 쓰지 않았으며 남편과 조용히 지냈다. 1949811일 저녁, 남편 존 마쉬와 영화 캔터베리 이야기를 보러가다가 애틀란타 13번가의 피치트리 거리를 건너다가 과속으로 달리던 자동차에 치어 5일 후 48세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럴드 오하라는 대농장인 타라(Tara)를 가진 농장주이다. 그에게는 뛰어난 미모로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첫째 딸 스칼렛(비비안 리)가 있었다. 그녀는 이웃에 사는 애슐리(레슬리 하워드)를 좋아했다.

그런데 애슐리는 스칼렛의 친척인 멜라니(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이러한 사실에도 스칼렛은 애슐리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다. 스칼렛을 좋아하는 남자는 레트(클라크 게이블)였다. 그러나 스칼렛은 레트의 나쁜 소문으로 그와 거리를 두었다.

이때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장교였던 애슐리는 스칼렛에게 멜라니를 부탁하며 전쟁터로 나갔다.

마침 멜라니의 오빠 찰스가 스칼렛에게 청혼하자, 홧김에 결혼을 하였다. 전쟁이 확대되며 찰스도 전쟁터로 나갔다가 폐렴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과부가 된 스칼렛은 가족의 권유에 따라 애틀란타에서 병원 일을 하고 있던는멜라니에게 갔다. 남북전쟁이 애틀란타까지 확대됨에 그녀는 자신을 좋아하던 레트에게 고향에 함께 가자고 한다. 레트가 동의하며 길을 안내하다가 중간에 스칼렛에게 혼자 가라고 하면서 전쟁터로 떠났다.

어렵게 고향에 도착한 스칼렛의 눈에는 페허로 변해버린 농토, 그에게 힘을 주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치매에 걸린 아버지, 장티푸스에 걸린 동생들로 집안의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노예들은 모두 도망가고 농토는 황폐화되었으나 정부로부터 엄청난 세금이 부과되었다. 스칼렛은 부과된 세금을 내기 위해 부자로 성공한 애슐리 여동생의 약혼자인 프랭클린과 결혼했지만, 그 역시 죽게 되면서 다시 과부가 되었다.

스칼렛은 다시 만난 레트의 청혼을 받아들여 부부가 되었다. 큰돈도 벌고 딸까지 낳으며 생활이 안정되는가 싶었지만, 애슐리와 스칼렛의 관계를 알고 있는 레트와 불화는 계속되었다. 두 사람의 불화 속에 둘째가 유산되고, 첫 딸마저 말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나니 슬퍼하는 스칼렛을 위로해주는 사람은 멜라니 뿐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멜라니마저 죽게 되면서 스칼렛은 자신이 진정 사랑한 사람은 애슐리가 아닌 레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레트는 스칼렛에게 질린 상태였기에 그녀의 설득에도 별거를 하자며 떠나게 되었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스칼렛은 자신의 미래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로 대신하며 끝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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