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의병의 날

윤의사 2024. 6. 1. 13:37

오늘은 2010년 국가에서 지정한 의병의 날이다.

경상남도 의령에서 처음 시작한 거병일을 국가에서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것이다.

의령에서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에 곽재우장군이 의병으로 일어킨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이다.

 

곽재우장군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귀신 같은 작전과 죽음도 마다 않는 용맹으로 일본군을 무찌른 홍의 장군이다.

제 잇속만 차리는 이들이 득실거리는 정치판에 끼어들기 싫어했으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위했다. 곽재우의 자는 계안, 호는 망우당, 시호는 충익이다.

 

곽재우는 성격이 쾌활하고 키도 큰데다, 눈을 부릅뜨면 섬뜩할 만큼 눈빛이 번쩍거렸다고 한다. 이름난 성리학자인 조식

밑에서 학문을 배우고, 틈틈이 군사에 관한 지식과 무술을 익혔다. 곽재우는 과거 시험에 합격했지만 답안지 내용에

임금의 뜻을 거스른 부분이 있어 취소되었다. 그 뒤로 벼슬에 대한 뜻을 접고 마흔 살이 될 대까지 자연을 벗삼아 지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집안의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먹이는 한편, 붉은 옷을 지어 입고 스스로를 홍의장군

이라 부르며 의병을 모아 일본군을 무찌르기 시작했다.

 

정암진에서 승리해 곡창 지대를 지키다

의병 활동을 시작하면서, 곽재우는 의령의 정암진에 지휘 본부를 설치했다. 그리고 이웃 고을의 일본군을 기습 공격하여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그 결과 처음에 수십 명에 지나지 않았던 의병 부대는 2천 명에 이르는 큰 병력으로 늘어났다.

15925, 곡창 지대인 호남을 차지하기 위해 일본군이 남강을 건너려 하였다. 일본군은 강물이 깊은 곳을 골라 미리

깃발을 꽂아 놓았다. 하지만 그 날 저녁 곽재우는 그 깃발들을 몰래 진창으로 옮겨 놓았다. 이튿날 새벽 일본군은 멋도

모르고 깃발을 다라 건너다 진창에 빠져 버렸다. 당황한 일본군은 달아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주변에서

기회를 노리던 곽재우는 즉각 공격 명령을 내렸다. 곽재우가 이끄는 의병은 우왕좌왕하는 일본군 수백 명을 죽이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김시민을 도와 진주성 싸움에서 승리하다

정암진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다시 3만 명이 넘는 대군으로 진주성을 공격했다. 곽재우는 위기에 빠진 진주성을 구하기

위해 즉시 지원군을 보냈다. 이때 200여 명의 의병들에게 나팔을 주어 어지럽게 불게 하고, 밤에는 막대기 하나에 횃불

5개씩을 달아 이리저리 휘젖고 다니도록 일러 주었다. 이렇게 주위를 어수선하게 하면서 우리 군사들이 매우 많은 것처럼 꾸미자 일본군의 기세가 꺾여 버렸다.

때마침 최경회 부대가 도와주러 달려오자 일본군은 홍의 장군 곽재우가 드디어 나타났다고 여기고 진주성에서 물러났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크게 이긴 3대 승리 가운데 하나인 진주성 싸움 뒤에는 곽재우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국난을 당하면 지배층들은 도망하기가 바빴지만 평소에 어려움을 겪었던 백성들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바쳤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부터 조선시대 임진왜란, 그리고 한말에 일어난 항일의병운동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6.25전쟁 때에는 학생들까지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키려고 하였다.

1000여회의 외침을 당하면서도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동화되거나 흡수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의병정신의 결과였다.

의병창궐도

 

홍의장군 곽재우

 

의병을 모집할 때 두드린 북이 걸렸던 현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