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국 가흥 김구선생 서남호 피난처

윤의사 2024. 5. 5. 11:32

매헌 윤봉길 의사 의거가 있은 후 일제는 안창호 선생을 포함한 애국지사 여러 명을 체포해 고문을 가하고, 상하이의 한국인들을 탄압하였다. 이에 김구 선생은 

'윤봉길의 홍구공원(현 루쉰공원) 의거는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한인애국단이 계획했으며, 애국단 단장은 자신'

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김구 선생은 자신에게 내걸린 현상금이 20만 위안에서 60만 위안(현 가치로 200억 원)으로 높아지고

감시망과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중국인과 밀정의 일제에게 신고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강성 가흥(현 저장성 자싱)으로 피신한다.

김구 선생이 피신한 서남호 호수에 면한 매만구 76호는 주푸청 수양아들 별채였다.

김구 선생은 뱃사공 주애보와 부부로 위장하고 선상생활을 하면서 중국인으로 행세하였다.

이름도 '장진구', '장진' 등의 가명을 사용하였다. 김구 선생의 아버지 외가가 '장(張) 씨'였기에 사용하였다.

호수 한쪽에 있었던 별채는 일경의 추격이 있으면 언제든 배를 타고 피신할 수 있게 배가 준비되어 있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낮에는 호수 위 배에서, 밤에는 숙소로 돌아와 생활하기를 반복하였다.

매헌윤봉길의사의 상하이 의거는 만보산 사건으로 틀어졌던 중국인들의 마음을 돌려놓으며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중국인들이 생겨나게 했다. 

물론 장제스 주석의 경제적 물질적 지원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중국인들의 도움으로 항일투쟁은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서남호 전경
매만구 76호에 있는 김구 선생 피난처 표지석
김구 선생 흉상
김구 선생이 이용했던 조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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