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윤의사 2024. 5. 4. 14:18

1919년 일제의 무단통치에 항거해 3·1 운동이 일어났다.

한반도 전체에서 온 국민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 운동을 일제는 총칼로 탄압을 가했다.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만세 운동을 이어가면서 한민족을 하나로 결집시켜 이끌어갈 정부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성(서울)과 연해주, 상하이 등에 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세 곳에 흩어져 있는 정부를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로 통합되었다.

당시 임시 정부가 자리 잡은 곳은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로,  조계지는 프랑스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는 지역으로 일본의 감시를 피하면서 독립운동과 외교활동을 하기 유리한 곳이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나라 이름을 대한 제국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대한’, 국민의 나라라는 뜻에서 ‘민국’ 이라고 했다.

행정부에 해당하는 임시 정부, 국회 역할을 하는 임시 의정원, 그리고 법원이 있었기에 오늘날 똑같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로 구성된 정부였다.

헌법(대한민국 임시 헌장)도 만들어, 임시 헌장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로 한다’는 내용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대한민국의 출발이었고,

제2조에서는 임시 의정원의 결의에 의하면 임시 정부가 통치한다”고 규정해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의회의 역할과 근대적 입법·행정기관의 분권을 분명하게 밝혔다.

하지만 1932년 일제가 상하이 사변을 일으켰고,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의거로 일본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더 이상 상하이에 머물 수 없었다.

항저우를 거쳐 친장으로 이동했고 1937년 일본이 중일 전쟁을 일으켜 중국 본토에 대한 공격으로 임시 정부는국민당 정부의 도움으로 창사, 광저우 등을 거쳐 충칭으로 옮겨갔다. 험난한 고난 속에서도 임시정부는 장제스 주석의 지원 하에 항일투쟁을 이어갔던 것이다.

임시 정부는 머물렀던 곳에 따라 상해 시기(1919~1932), 이동 시기(1932~1940), 충칭 시기(1940~1945)로 구분한다.

그 중 상하이 임시정부는 낡은 주택가 속에 붉은 색 벽돌로 만들어진 작은 건물이다.

한때는 임대료도 제대로 못내다가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의거로 장제스 주석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어려움 속에서 항일투쟁을 이어갔던 곳이다.

한국과 중국 정부의 노력으로 상하이 임시 정부 건물에 대한 공동 조사가 이루어진 결과 1993년 일제 강점기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하기 시작했다.

이승만이 대통령, 이동휘가 국무총리가 되어 임시 정부를 이끌어갔다.

국내외 연락을 위해 비밀 행정 조직인 연통제를 실시하고, 교통국과 통신국도 두어 국내는 몰론 다양한 지역의 독립운동가들과 연락을 하였다. 독립신문을 발간해 국내는 물론 미국과 하와이 등 해외 교포들까지 임시 정부의 활동을 알 수 있게 했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미국이나 국제 연맹이 우리나라를 통치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보낸 사실이 알려져 위기를 맞았다. 무장 투쟁을 주장했던 신채호 등 독립운동가들이 국민 대표 회의 소집을 요구해 1923년에 국민 대표 회의가 열렸다. 임시 정부를 해체해야 한다는 사람들과 계속 임시 정부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람들로 나뉘어져 대립했으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승만, 이동휘, 안창호 등 주요 인물들이 모두 임시 정부를 떠났으며, 윤봉길의사의 상하이 의거 전까지 임대료도 내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윤봉길의사가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지는 독립 투쟁을 펼쳐 큰 성과를 이루어내면서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후원을 얻어내면서 일제의 압박을 피해 이동하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풍요가 어려움 속에서 항일운동을 하신 순국선열의 노력이라는 사실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관리를 하면서 제약을 하는 점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김구 주석이 거처하던 영경방

'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경령 묘원  (2) 2024.05.15
만국공묘가 있는 송경령 묘원  (0) 2024.05.12
상하이 영안백화점  (0) 2024.05.11
김구 선생의 피난처, 재청별장  (0) 2024.05.06
중국 가흥 김구선생 서남호 피난처  (0) 2024.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