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시인 이상

윤의사 2024. 4. 17. 20:20

일제 강점기의 시인이며 소설가이다. 그의 글은 때로는 암호처럼 보일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데, 특히 그의 시 오감도와 소설 날개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아버지 김연창이 이발소를 운영하던 사직동에서 어머니 박세창 사이에서 태어난 이상은 세 살 때인 1912년 몰락한 양반인 큰 아버지 김연필의 양자로 들어갔다.

자식을 낳지 못한 큰어머니의 구박을 받았으며, 아들가지 태어나면서 홀대가 심해졌다. 큰아버지는 이상을 집안을 일으킬 인재로 생각해 엄격하게 양육하였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과 기사로 근무하였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며, '이상'이라는 필명은 총독부 건축 기사로 일하던 당시 한 인부가 김해경을 '긴상(김씨)'라고 부르는 것을 헷갈려 실수로 '이상'이라고 불렀다는 설과 보성고보 시절부터 절친했던 친구 구본웅이 선물로 준 오얏나무(: 오얏 ’)로 만들어진 화구상자(: 상자 ’)를 받고 친구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서 이상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전자는 이상의 여동생 김옥희와 아내 변동림이, 후자는 보성고보 시절 직접 디자인한 졸업 앨범에 이상이라고 서명한 것으로 각각 주장되고 있다.

요양차 갔던 온천에서 기생 '금홍'과 알게 되어 1933년 종로에 제비다방을 개업하고 1934년에 이르러 구인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금홍과 동거하다가 외박이 잦아 헤어지면서 제비다방은 1935년 폐업했다. 금홍과 동거하며 난해한 초현실주의 시 '오감도'와 소설 '날개'를 써내 천재적 면모를 보였다.

1936년 구본웅의 계모였던 변동숙의 이복동생인 변동림을 구본웅이 소개해 결혼하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10월에 도쿄로 떠났다. 1937년 사상 불온 혐의로 일제 경찰에 검거 감금되었다가 건강악화로 풀려나지만 회복되지 못하고 1937417, 27세의 젊은 나이에 도쿄대 부속병원에서 "멜론이 먹고 싶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천재 시인은 요절했다.

변동림은 이상과 사별한 지 7년 후인 1944년 화가 김환기와 재혼했고 남편 김환기의 이전 호를 따서 김향안(金鄕岸)으로 이름을 바꾼 이후 프랑스 소르본 대학과 에콜 드 루브르 등에서 미술을 공부해 미술평론을 쓰기도 했다.

이상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