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윤의사 2024. 4. 13. 14:08

김동삼 선생은 1931년 만주사변 직후 일제 경찰에 하얼빈에서 피체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평양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받고 평양감옥에서 옥중생활을 하다가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되어

1937 4 13일 순국하였다. 선생은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일제의 감시에 혹시나 처벌받을까 두려워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김동삼 선생의 시신을 아무도 수습하지 않을 때,

한달음에 달려간 만해 한용운 선생이 성북동 심우장에서 장례를 치루고 화장을 해 한강에 뿌렸다고 한다.

김동삼 선생은 일생을 분열된 독립운동의 통합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그의 이름인 동삼(東三)에는 중국 동삼성(東三省) 독립운동의 통합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는데,

본명은 긍식(肯植), 이명으로 종식(宗植)을 쓰기도 했다. 

김동삼 선생의 며느리는 경학사 조직에 참여하여 간도지역 독립운동 기반을 만든 김동삼 선생의 제자 이원일 선생의 딸인 이해동 선생이다.

이해동 선생은 만주에서의 집안일을 도맡았으며, 1945년 광복이 될 때까지  어려움 속에서도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다. 

이해동 선생은 77년이 지난 1989년에서야 고국으로 돌아와 생활하다가 2003년에 타계하였다.

이해동 선생이 <만주생활 77년>이라는 책에서

평생 남편에 대해 불평 한마디 없었고

 

말없이 참고 침묵으로 살아온

시어머님(박순부)의 일생은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시아버님(김동삼)께서 직업혁명가로

평생을 국권회복을 위하여 공을 세웠다면

그 속에는 시어머님 몫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희생과 도움이 없었다면 일제에 항쟁하는 일은 어려웠을 것이다.

김동삼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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