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오늘은 안중근의사 순국

윤의사 2024. 3. 26. 20:02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서 힐튼 호텔 뒤편을 지나면 백범광장이 나온다. 백범광장에는 백범 김구의 동상과 함께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있다.

 

이곳에서 백여 계단을 오르면 안중근의사기념관이 나온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와 국민 성금으로 일본 식민지의 상징인 조선 신궁 터에 세워졌다. 협소한 전시 공간과 시설의 노후화로 40년 후인 2010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의거 101주년을 기념하면서 재개관했다.

 

기념관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품(遺品)과 사진, 유묵 등이 전시돼 있다. 유묵을 보니, 자나 깨나 오직 나라만 생각한 듯하다. 그는 독립에 대한 결의를 다진 동지 11명과 손가락을 잘라 태극기에 ‘대한독립(大韓獨立)’의 넉 자를 써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칠 것을 맹세했다.

안중근의사 좌상과 단지 후 쓰신  '대한독립'

 

안중근의사기념관 전경.
 

 

기념관에는 안중근 의사를 훌륭하게 가르친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사진도 있다. 그녀는 아들이 사형을 선고받자, 두 동생을 급히 여순의 감옥으로 보내 “자식으로서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해 상고하겠다면 그건 결코 효도가 아니다. 큰 뜻을 품고 죽으려면 구차히 상고하여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전하라고 했다. 어찌 자식이 죽는 것에 대해 가슴이 아프지 않았을까? 그러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는 자식의 죽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꿋꿋하게 죽음을 맞이하라는 조마리아 여사의 가르침은 오늘날 어머니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한다.

 

불멸의 영웅, 안중근

 

얼마 전, 한 연예인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SNS에 올리자, 어떤 일본인이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는 반응을 보였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테러’를 ‘정치적인 목적을 위하여 조직적·집단적으로 행하는 폭력 행위. 또는 그것을 이용하여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려는 사상이나 주의’라고 나와 있다. 한 마디로 무고한 시민들을 희생양 삼는 것이다. 그러나 안 의사의 의거는 그 어디에서도 무고한 시민의 희생은 없었다. 더구나 안 의사를 조사했던 일본인 검사는 “일본인으로서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안중근은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라고 할 정도였다.

 

중국의 석학 장타이옌도 “안중근은 조선의 안중근, 아시아의 안중근이 아니라, 세계의 안중근이다”라고 했으며, 중국 속담에는 “혁명가가 되려거든 손문처럼 되고, 대장부가 되려거든 안중근처럼 되라”는 말이 있으니, 테러라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역 역사에는 안 의사의 뜻을 기리려는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마련해 놓았다. 테러리스트가 아닌 애국지사요, 동양 평화론자인 안 의사를 추모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만든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지금도 안 의사의 묘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사형당한 안 의사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두 동생이 애원했지만, 독립운동의 성지(聖地)가 될 것을 두려워한 일본 정부의 반대로 여순감옥의 죄수 묘역에 은밀하게 묻혔고, 지금도 위치를 알 수가 없어 안타깝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10시를 안 의사의 사형 집행 시간으로 잡은 것은 복수심에 의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세상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 안중근 의사는 일찍이 ‘일일부독서면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면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라고 했다.

안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여순 고등법원장과의 면담에서 자신의 동양평화론을 설명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공동은행을 설립해 공동화폐를 발행하고, 이를 위해 동양평화회의를 이룩하자는 내용이었다. 안 의사의 구상은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에 의해 실현되지 못했다. 오늘날 동아시아 정세는 불안하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따라 한, 중, 일 삼국이 대등한 관계로 서로 상대를 존중하며 공동번영을 도모하자는 주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 본 글은 필자가 한국교육신문에 3월 18일 게재된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