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오늘은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 타계

윤의사 2024. 3. 23. 16:40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의 한글 학자이자 교육가이다.

일제 시대에 한글 연구와 교육에 힘을 쏟는 등 우리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최현배는 1894년 10월 19일 경상남도 울산도호부 내상면 동동리(오늘날 울산광역시 중구 동동) 에서 아버지 최병수(崔炳壽)와 어머니 박순화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최현배는 경주 최씨 가문을 일으킨 최진립 장군의 10대손이다.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경기도 경성부 행촌동(오늘날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으로 이주해 경성보통보통고등학교에 입학해  자신의 스승인 한힌샘 주시경을 만나 조선어 강습원에서 국어학 및 국어문법 등을 배웠다. 최현배는 조이곳에서 주시경의 강의를 들으며 민족의식을 깨우치고, 한글을 연구하기로 결심하였다.
1919년에 일본 히로시마에 있는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오늘날 히로시마대학)에 입학해 졸업했다.

귀국 후 고향인 울산에서 조선인 상궈놕보를 목적으로 공동상회를 설립하였다.

1920년 부산에 있ㄴ는 동래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있다가 1922년에 교토에 있는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철학부에 입학, 교육학을 공부하여 1925년 학사학위를 받고 같은 해 동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수학하였다.

1926년 귀국해 연희전문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다가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사임하였다.

그는 주시경의 뜻을 이어받아 조선어학회를 만들어한글 교과서를 보급하는 한편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한글 교육에 힘썼다.

1933년에는 우리말의 맞춤법과 표준어를 정리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었고<한글갈>을 지어 한글이 국어학의 한 갈래가 되도록 하였다.

1942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4년형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가, 조국이 해방되면서 함흥형무소에서 8월 17일 오후에 풀려났다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 한글 가로쓰기를 완성하였다. 함흥 형무소에 투옥되었는데, 시조를 지으셨다.

 

함흥 형무소

 

반룡산 좋다하여, 유산차로 예 왔느냐?

성천강 맑다하여, 뱃놀이로 왜 왔느냐?

아니라, 광풍이 하 세니, 지향없이 왔노라.

 

벽돌담에 둘러서, 열 길이나 높아있고,

겹겹이 닫힌 문에, 낮밤으로 지켜있다.

지상이 척척(呎尺) 곧 천리라 저승인가 하노라.

 

최현배는 모진 고문을 이겨내기 위해 시조를 지었다고 한다. 

열길 벽돌담 안에서 한글 가로쓰기를 완성한 것처럼 시조도 가로쓰기로 하였다.

 

그 뒤에도 최현배는 조선어학회를 이은 한글학회 이사장이 되어한자를 쓰지 말고 한글만 쓰자고 하는 등 외세로부터 우리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1962년 한글과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생존인물로서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을 수여받았으며, 1970년 3월 23일 향년 76세로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노환으로 타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