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오늘은 트리뷴지 「한국의 호소, 트리뷴지에 보낸 황제의 성명서, 일본의 강요, 열강국의 간섭요청」이라는 제목으로 게재

윤의사 2024. 2. 8. 20:51

더글라스 스토리는 런던 트리뷴(The Tribune)지의 특파원으로 한국에 와서 을사늑약에 관한 고종의 밀서를 받아 1906년 2월 8일자에 트리뷴지에 폭로 보도함으로써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05년경 스토리는 중국 북경에 머물러있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대한제국 외교관이 어렵게 외교를 펼치는 것을 보고 한반도에 관심을 가졌다. 원래 스토리는 전쟁과 국제전문기자로 영국에서 꽤 알려진 기자였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부근에서 태어난 스토리는 30세 전후에 영국과 트란스발 공화국이 벌인 보어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하기 시작해, 러일전쟁 때에는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러일전쟁 후 한국 상황을 조사하기 위하여 중국 상해와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19061월 초에 한국에 들어와서 상해에서 만났던 외교관을 통해 고종과 연락이 닿았다.

고종은 내시를 밀사로 해서 1906129일자 국새가 날인된 고종의 밀서를 바지가랑이 속에 숨겨 덕수궁 밖에서 전해주며 보도를 부탁하였다.

 "을사늑약은 한국의 황제가 동의하지도 서명하지도 않았고, 황제는 조약의 조항들을 반대하며, 일본의 통감 지명도 승인한 적이 없고, 한국의 외교업무를 다른 열강들이 5년을 초과하지 않는 기간 동안 공동 보호하도록 초청한다."

는 내용이었다.

스토리는 만일을 대비해 서울에서 유럽인 친구에게 사본을 만들어 보관하게 하고, 중국 지푸(芝罘)로 가서 런던으로 전보를 보냈다. 이어 지푸 주재 영국영사 오브라이언 버틀러(Poerce Essex O'Brien-Buteler)를 찾아가 다시 사본을 만들어 북경 주재 영국공사에게 전송하였다.

스토리가 지푸에서 타전한 기사는 트리뷴지 190628일자에 한국의 호소, 트리뷴지에 보낸 황제의 성명서, 일본의 강요, 열강국의 간섭요청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즉시 주영 일본대사관의 항의가 있었으나, 210일자에서 이를 반박하고, 190610월부터 동양의 장래라는 시리즈 기사를 연재하면서 121일자에 고종의 밀서 사진과 전문을 게재하여 을사늑약이 일본의 강요에 의해 체결된 것임을 널리 알렸다. 1907년에는 트리뷴에 게재했던 시리즈 기사를 엮어 동양의 내일(To-morrow in the East)을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트리뷴지에 보도된 국서 전문은 다음과 같다.(광무 10,1906129일 국새(國璽)

 

1. 19051117일 일본 대사와 박재순이 체결한 5조항은 황제께서 처음부터 승인한 것이 아니며, 국새를 찍지도 않으심.

2. 황제께서는 이 조약을 일본이 무단 반포함을 반대하심.

3. 황제께서는 독립된 황제권을 한 치도 타국에 내주시지 않았음.

4. 일본의 외교권 늑약도 근거 없는데 하물며 내치상에 1건이라도 어찌 인준하겠는가.

5. 황제께서는 통감이 와 있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고, 황제권을 한 치도 외국인에게 맘대로 함을 허락지 않으심.

6. 황제께서는 세계 각 대국이 한국 외교를 향후 5년간 함께 보호하기 원하심.

<공훈전자사료관 참조>

더글라스 스토리가 쓴 <동방의 내일>, 고종의 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