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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떡

윤의사 2024. 1. 28. 10:27

빈대떡은 녹두를 맷돌에 갈아서 어린 애호박을 송송 썰어 넣거나 파, 고추를 넣기도 하고 오징어나 굴 등의 해산물 또는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넣고 부친다. 대개 가마솥뚜껑에 부치는데, 들기름이 귀하던 시절에는 돼지비계로 솥뚜껑위로 골고루 칠한 후에 부쳤다.

빈대떡은 지역에 따라서는 '녹두떡, 문주, 부침개, 지짐' 등으로 달리 부르기도 한다.

빈대떡을 만드는 녹두는 해독작용이 뛰어난 철분과 카로틴이 많고, 다른 첨가물의 영양가도 높으면서 입맛을 되찾게 해주는 음식이기에 즐겨 먹었다.

 

빈대떡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조선시대에 흉년이 들거나 보릿고개 시절에 먹을 것이 없으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숭례문 밖으로 많이 모여들었는데 이를 불쌍하게 생각한 부잣집에서 이들에게 줄 빈대떡을 만들어 소달구지에 싣고 와서는

○○ 집의 적선이오!”

라면서 나눠주었다. 그래서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떡이라 하여 그 이름을 빈자(貧者)이라고 불리웠다. 그러므로 빈대떡은 우리 조상들이 이웃에게 나눔을 베푼 음식이라 하겠다.

장계향(1598~1680)<음식디미방>에서

녹두를 뉘 업시 거피하여 되게 갈아 기름 잠기지 아니케 부어 끓이고 적게 떠 놓고 거피한 팥 꿀에 말아 소 넣고 그 위에 녹두 가루로 덮어 빛이 유자빛 같이 지져야 좋으니라

녹두를 주재료로 하여 팥과 꿀을 속으로 넣은 일종의 녹두병으로 바로 빈쟈이다.

서울 옥수동에서 살았던 빙허각 이씨(1759~1824)가 쓴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 빈자빙쟈를 두루 사용하였다. “녹두를 되게 갈아 즉시 번철의 기름이 몸 잠길 만치 붓고 녹두즙을 술(수저)로 떠 놓고 그 위에 밤소 꿀 버무린 소를 놓고 녹두즙을 위에 덮고 술로 염정하여 눌러가며 소 꽃전 모양같이 만들고 위에 백자() 박고 대추를 사면으로 박아 지지나니라.”

장계향이나 빙허각 이씨의 요리법이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지배층에서 전통적으로 계승되어오던 음식이 아닐까 한다.

1943년에 발표된 한복남이 부른 빈대떡 신사에서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

의 가사로 빈대떡이 서민 음식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민병덕의 <잘난척하기 따좋은 우리역사문화사전>에서)

빈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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