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오늘은 피의 일요일

윤의사 2024. 1. 22. 18:08

1905년 122일 일요일 아침.

이날도 페테르스부르크는 흰눈에 덮여 있었다. 그러나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었고 햇빛이 흰눈 위로 하얗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행진이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은 먼저 정해진 장소에서 집회를 출정식을 가진 뒤 목숨을 건 행진임을 거듭 다짐하였다.

네바 지구는 1만여 명의 군중이 9시 반에 출발하여 10시경에 슈릿셀 소방서 앞에 도착했다. 짜르의 기병대가 벌써부터 행진하는 노동자 대열을 덮치기 시작하였다. 그곳의 저지선을 지키고 있던 카자크 기병대장 카메네프 대령은 해산을 명령하며 공포 3발을 쏘았다. 그러나 시위대는 기가 죽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길을 터라, 우리는 짜르를 도우러 가는 길이다.”

그렇게 행렬이 앞으로 조금 나아간 순간이었다. 카자크 기병이 칼을 뽑아들고 행렬을 향해 돌진해왔다. 날뛰는 말 위에서 기병은 칼을 휘둘렀다. 부상자가 나오고 사람들은 대열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네바 쪽으로 갔다. 그리고 꽁꽁 언 강을 가로질러 맞은편으로 갔다.

한편, 신부 가퐁은 푸치로프 공장 근처의 나르바 지부의 노동자 대열에 참가하였다. 이 지부 행렬의 선두에는 커다란 현수막과 황제의 초상과 교회기, 십자가, 이콘(성상화) 등을 든 사람들이 늘어섰다. 가퐁은 그 중에서 십자가를 들고 민중에게 호소하였다.

절대 무기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가퐁의 말에 시위대의 건장한 청년들은 일부 강경파나 테러리스트들의 몸을 수색하여 무기를 빼앗았다. 시위대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걸어갔다.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병사들이여 인민을 쏘지 말라!”

오전 11. 행진이 시작되었다. 4,5천여 명의 군중이 찬송가를 부르며 천천히 겨울궁전으로 향하였다.

주여, 당신의 종을 구하소서.”

페체르코프 가도를 북진한 나르바 지부의 노동자들이 나르바 개선문 앞에 이르렀을 때 일단의 보병이 그들의 앞을 막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문 앞으로 다가갔을 때, 보병대장의 명령에 따라 기병대가 달려나와서 행렬의 선두에 선 노동자들을 향하여 긴 칼을 휘둘렀다. 노동자 몇 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 순간 대열이 흐트러지면서 소란이 일었다. 그 때 가퐁이 외쳤다.

여러분, 흔들리지 말고 전진합시다!”

가퐁의 호소에 따라 흩어졌던 노동자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그들은 다시 대열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아갔다. 때마침 낯 미사를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동시에 군대의 나팔소리가 길게 세 번 울렸다. 그러자 노동자들을 겨누고 있던 보병들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탕탕탕..’

황제의 초상화를 들고 있던 노동자가 쓰러졌다. 그러자 땅에 떨어진 황제의 초상화를 노인이 주워들었으나 바로 쓰러졌다. 다른 노동자는 총탄에 팔을 관통당하고 손에 들고 있던 교회기를 떨어뜨렸다. 총탄은 가퐁도 피해다니지 않았다. 가퐁은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열 살 가량의 한 소년은 총탄에 맞아 쓰러져서도 손에 들고 있던 등불을 놓지 않았다. 소년은 비척비척 다시 일어났지만 두 번째 일제 사격이 이뤄졌을 때, 가슴에서 피를 흘리며 영영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다섯 차례에 걸쳐서 사격이 행해졌다. 나르바 개선문 앞 광장은 벌건 피로 물들었다.

일제사격이 끝나고 몇 분 뒤, 총탄에 맞아 쓰러져 있던 가퐁에게 푸치로프 공장의 한 노동자가 다가왔다.

신부님...”

가퐁은 노동자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듯, 몸을 뒤척였다. 그러자 노동자가 가퐁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두 사람은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무렵 네바강 북쪽의 비보르크 구와 페테르스부르크 구 노동자 24천여 명은 네바강을 건너는 다리 앞에서 기병대가 휘두르는 칼과 보병의 총격을 받아 많은 부상자가 나와서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곳곳에서 노동자들은 행진을 방해받았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상자와 부상자가 속출하였다. 페테르스부르크 시는 어디든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그러나 군대는 땅에 쓰러져 있는 사상자를 그대로 방치하였다. 다만 동료 노동자들과 길가던 시민들이 이들을 병원으로 옮겼다.

총칼로 무장한 군대의 저지선을 뚫고 많은 노동자들은 겨울궁전으로 향하였다. 간악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동자들이 겨울궁전 앞으로 통하는 네프스키 대로에 모여들었다. 네프스키 대로는 폭이 60여미터나 되는 페테르스부르크 시의 중심 도로이다. 따라서 일요일이면 많은 시민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노동자들은 많은 시민들과 함께 네프스키 대로를 행진하였다.

겨울궁전 앞은 총과 대포로 무장한 군대가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었다. 겨울궁전앞 알렉산드르 황제 광장에 다다른 노동자들과 군중은 신부 가퐁과 황제를 기다렸다. 그러나 가퐁이 나타날 리가 없었다. 황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후 2시에 조금 못미친 시각이었다. 군대는 황제 정원 앞의 군중에게 해산 명령을 내렸다.

모두 해산하라,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그러나 군중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실 겨울궁전 앞 황제 광장에 모여든 노동자들은 이 때까지도 나르바 개선문 앞에서 군대가 발포하였다는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쏠테면 쏴라. 해산은 않겠다.”

너희들도 군복을 벗으면 우리와 똑같이 고통스런 생활로 돌아올 것이다.”

일본놈들한테 당하고, 러시아 인을 쏠 참이냐?”

군대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군중은 도리어 큰소리를 치면서 병사들의 위협을 무시해버렸다. 시위군중은 군대가 진짜로 발포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은 듯하였다.

나르바에서 시위대를 향하여 총을 쏘았대요.”

설마...”

그럼 우리에게도...”

군중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해군본부의 시계탑에서 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군중은 모두 숨을 죽였다. 침묵의 순간이었다. 그 침묵을 깨고 병사들 진영에서 나팔 소리가 길게 세 번 울려퍼졌다. 근위대 병사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대열의 선두에 서 있던 몇 사람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광장에 쌓인 흰눈 위로 선명한 붉은피가 뿌려졌다.

동포에게 총을 쏘다니...”

짜르 전제 타도하자!”

일부 군중이 분개하면서 병사들에게 대들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해서 다시 총구가 불을 뿜었다. 군중은 우왕좌왕하였다. 광장앞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군중은 서둘러 흩어졌다.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마치 사냥감을 몰듯 후퇴하는 군중의 뒤를 기병대가 군중을 향해 무참히 총을 쏘았다.

청원시위에 참가한 6만 명 내지 7만 명 중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처참하게 얼룩진 피의 일요일이었다.

이 사건은 12년 후 러시아 혁명의 전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