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오늘은 카사블랑카 회담 시작

윤의사 2024. 1. 14. 10:44

우리가 제2차세계대전이 진행되면서 전쟁 국면, 그리고 전후처리를 위한 회담으로 1943년 11월 우리나라의

독립을 최초로 문서로 약조했던 카이로 회담, 그리고 한반도에서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에 미국과 소련이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담당한다는 1945년의 얄탸 회담, 카이로 회담을 재확인한 7월의 포츠담 회담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치열한 전쟁으로 바뀌게 된 계기를 만든 회담이 있었다. 바로 카사블랑카회담이다.

 

1943114, 루스벨트와 처칠, 자유 프랑스 장군 샤를 드골 및 앙리 지로가 프랑스령 모르코 카사블랑카의

앙파호텔에서 만나 11일간 제2차 세계대전의 국면을 논의하는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연합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축국의 무조건 항복을 해야 끝맺음 한다카사블랑카 선언

발표하였다. 더불어 루스벨트는 회담 마지막 날인 1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연합국이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조건 항복을 통해 주축국의 전쟁 능력을 완전히 없애자는 것이다.

소련의 스탈린도 회담에 초대했지만, 독일과 소련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전쟁 중이라 불참했다. 그리고 프랑스는

독일의 지배하에 있으면서도 샤를 드골과 앙리 지로가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다툼이 회담에서도 이어졌기에

중요한 군사 계획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회담에서는 북부아프리카 원정이 끝난 후 시칠리아에 대한 상륙작전 전개, 미국의 태평양 전선의 참여 확대,

나치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소련이 독일과 단독강화하면서

전쟁에서 빠져나가고, 독일이 동부전선의 군대를 유럽 서부에 집중한다면 연합국에게 불리할 것을 염려한

루즈벨트의 생각이 반영된 회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