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오늘은 권율 장군이 독산성에서 일본군 격퇴

윤의사 2024. 1. 13. 12:43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 권율은 전라도 순찰사 이광이 전라·경상·충청 3도의 병력으로 조직한 남도근왕군에

 중위장이 되었다.

8만 명의 남도근왕군은 1592년 7월 11일(음력 6월 3일), 오산의 독산성을 거쳐 안산과 금천을 향해 북진 하던 중

수원과 용인 방면의 남도근왕군이 7월 12일부터 7월 14일까지 광교산 일대에서 벌어진 용인전투에서 패하며 전라도로 후퇴하였다.

권율은 전라도에 머물며 도절제사가 되어 8월 13일, 14일에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이끄는 일본군 제6번대와 대둔산 배티재에서 맞붙어 호남 진격을 막아냈다.
권율은 전라도 관찰사 겸 순찰사가 되어 그해 12월 한양을 탈환하기 위해 1만에 이르는 호남의 병력을 이끌고최원, 김천일의 부대와 함께 오산 독산성에 주둔하며 서울탈환의 기회를 엿보며 관서지방과 관북지방으로 가는 왜군의 보급로를 막으려 했다. 

이때 경기도에 주둔하고 있던 우키타 히데이가 이끄는 일본군 제8번대가 2만의 군사로 독산성을 포위하며 공격을 해왔다.

일본군은 성으로 들어가는 물줄기를 막아 함락시키려 했지만, 권율은 소규모 부대를 편성해 야간에 기습을 가해 일본군의 작전을 막아냈다. 산꼬대기에 있는 독산성의 특성상 물이 부족할 것으로 생각한 우키타 히데이는 포위만 한 채 독산성으로의 식량과 물 공급을 차단하였다. 이에 권율은 적이 잘 보이는 곳에 말들을 묶어 쌀을 뿌리며 목욕을 시켰다. 이를 본 우키타 히데이는 독산성 안에 물이 풍부해 말까지 목욕을 시킨다고 생각해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1593년 1월 13일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은 퇴각하는 일본군을 쫓아 공격해서 큰 전과를 올렸다. 

그래서 독산성을 '말을 목욕시킨 곳'이라고 하여 ‘세마대(洗馬臺)’로 불린다. 

산성전투에서 승리한 권율은 군사를 고양의 행주산성에 주둔시켜 1593년 3월 14일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에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공으로 1593년 6월 권율은 도원수가 되었다. 왜란이 끝난 이듬해인 1599년 7월 6일,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이순신, 원균과 함께 선무 1등 공신이되어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을 대표하는 명장이 되었다. (사진:진성규 교수님)

 

어계산에서 바라본 독산성

 

세마대 안에 있는 보적사 대웅전,  '보적사'라는 이름은 봄철에 먹을 것이  쌀 한 되 밖에 없었던 노부부가 한되의 쌀을 부처님께 공양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창고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를 부처님의 은혜로 여긴 부부는 그 후 불심이 더욱 깊어져 '보적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독산성 동문으로, 독산성은 사적 제140호로 지정된 총길이 1100m 내성은 350m로 백제시대 쌓은성으로 삼국시대부터 군사적요지로 알려져있을 만큼 오래된역사를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