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쌤의 역사 속의 오늘은?

지금도 거란족이

윤의사 2024. 1. 17. 15:47

고려거란전쟁이 한국방송에서 정통사극으로 방영되고 있다.

요즈음은 사극이 퓨전이라 감동을 주기에 부족하지만,

정통사극이라 재미와 감동은 배가 되는 듯 하다.

 

12세기 이후 거란족은 몽골족과 위구르족에 편입되었지만, 지금도 자취가 남아 있다.

홍콩의 영국계 항공사인 캐세이 퍼시픽 항공에서 '캐세이(Cathay)'는 중국을 가리키는 옛날 영어식 표현으로

거란족을 뜻한다. 또한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을 지칭하는 '키타이(Китай, Kitay)'도 거란족을 가리킨다.

이처럼 유럽과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을 나타내는 국명으로 영향을 미친 거란족은 농경과 유목 생활을

하다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의하여 정복되어 고구려 백성으로 살면서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돌궐·위구르 민족과 함께 생활하다 916년 야율아보기가 거란족을 통일하고,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며 국력이 신장되어 송나라와 대립하였다. 송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고려와 화친을 맺으려고 고려 태조 24(942)에 유목민에게 가장 귀한 낙타 50마리를 예물로 보냈으나, 발해를 멸망시킨 원수의 나라라고 낙타를 만부교에서 굶어죽이고 함께 온 사신 30명은 귀양을 보내니, 후에 거란침입의 빌미가 되었으며 이후 3차에 걸쳐 침입했다.

번성하던 요나라가 만주에서 일어난 퉁구스계인 여진족에게 공격을 받고 멸망하기에 이르렀다.

다급한 상황에서 왕족인 야율대석은 불과 200여 명 남짓의 군사들을 이끌고 탈출해 몽골 지역을 거쳐 이민족과의 전투를 통해 서쪽으로 이동해 현재의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고 ‘카라 키타이’, 즉 ‘검은요(黑遼)’ 또는 '서요'라 불리웠다. 그래서 지금도 중국을 '키타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