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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준’의 <잊음을 논함>

윤의사 2023. 11. 19. 11:14

천하의 걱정거리는 어디에서 나오겠느냐?

잊어도 좋을 것은 잊지 못하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는 데서 나온다.

눈은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고, 귀는 좋은 소리를 잊지 못하며, 입은 맛난 음식을 잊지 못하고, 사는 곳은 크고 화려한 집을 잊지 못한다. 천한 신분인데도 큰 세력을 얻으려는 생각을 잊지 못하고, 집안이 가난하건만 재물을 잊지 못하며, 고귀한데도 교만한 짓을 잊지 못하고, 부유한데도 인색한 짓을 잊지 못한다. 의롭지 않은 물건을 취하려는 마음을 잊지 못하고, 상상과 어긋난 이름을 얻으려는 마음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잊어서는 안될 것을 잊는 자가 되면, 어버이에게는 효심을 잊어버리고, 임금에게는 충성심을 잊어버리며, 부모를 잃고서는 슬픔을 잊어버리고, 제사를 지내면서 정성스러운 마음을 잊어버린다. 물건을 주고받을 때 의로움을 잊고, 나아가고 물러날 때 예의를 잊으며,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제 분수를 잊고, 이해의 갈림길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잊는다.

먼 것을 보고 나면 가까운 것을 잊고, 새것을 보고 나면 옛것을 잊는다. 입에서 말이 나올 때 가릴 줄을 잊고, 몸에서 행동이 나올 때 본받을 것을 잊는다. 내적인 것을 잊기 때문에 외적인 것을 잊을 수 없게 되고, 외적인 것을 잊을 수 없기 때문에 내적인 것을 더더욱 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잊지 못해 벌을 내리기도 하고, 남들이 잊지 못해 질시의 눈길을 보내며, 귀신이 잊지 못해 재앙을 내린다. 그러므로 잊어도 좋을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을 서로 바꿀 능력이 있다.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을 서로 바꾸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잊어도 좋을 것은 잊고 자신의 잊어서는 안될 것은 잊지 않는다.

 

2024학년도 수학능력시험 국어 25번 문항에 나온 지문이다. 유한준은 잊어야 하는 것은 잊지 못하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을 잊은 것에서 문제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는 성리학적인 사고 아래 효, , , , 분수, 도리 등을 잊지 않기를 당부하면서 개구리 올챙이 적을 잊지말라는 뜻으로 적었다.

 

유한준은 조선 영조순조 년간에 활동한 문장가이며 서화가이다.

초명은 한경(漢炅). 자는 만청(曼倩) 또는 여성(汝成), 호는 저암(著菴) 또는 창애(蒼厓)이다. . 영조 44(1768) 진사시에 합격한 뒤 음직으로 정조 18(1794)에 김포 군수가 되었으며, 삼척부사 등을 거쳐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송시열을 존경하여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당대에 뛰어난 문장가로 박지원과 쌍벽을 이루어 임노(任魯)"향후백년무차작(向後百年無此作)"이라 했고, 이채(李采)"당세문장제일인(當世文章第一人)"이라고 하였다. 저서로 저암집이 전해온다.

사실 유한준과 관련된 말은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저술한 유홍준 선생이 인용한 말의 원작자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말. 소위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읻이다. 어떤 분야나 사람이든 사랑과 애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유한준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서화를 모은 석농 김광국이 만든 <석농화원(石農畫苑)>이라는 화집의 발문을 쓴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 而非徒畜也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 이비도축야)

 

알게 되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진심 어린 마음으로 보고자 한다. 보고 있노라면 그것과 함께 하고자() 한다. 이리되면 그저 헛되이 모으는 것이 아닌 경지에 이른다.’

 

의사인 석농 김광국이 자신의 자산을 투자해 모은 서화를 모아 책을 펴내니 유한준이 보낸 최고의 찬사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