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사슴'의 작가, 노천명

윤의사 2023. 9. 2. 15:34

191191일 황해도 장연에서 출생했다. 어릴 때 이름은 노기선이나 홍역으로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나면서 노천명으로 개명했다. 1918년 부친의 죽음과 함께 서울로 이사온 후 1930년 진명여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에 들어갔다. 이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언니마저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기숙사에서 고독한 시간을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데 보냈다. 19326월에 발간된 <신동아>밤의 찬미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34년 졸업 이후 조선중앙일보, 1937년 조선일보가 발행하는 잡지 여성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1938년 대표작인 사슴을 비롯한 자화상등이 실린 시집 <산호림>을 출간했다.

1938극예술연구회에서 안톤 체호프의 작품 앵화원(櫻花園)을 무대에 올렸을 때 만난 보성전문학교 김광진 교수와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유부남인 김광진과의 사랑은 끝내 이루지 못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게 되었다. 노천명과의 만남으로 이혼을 하려던 김광진도 기생 왕수복과 월북을 하였다.

노천명은 1939년 이른바 황군위문작가단의 한 사람으로 만주사변의 승전지를 돌아보고, 1942년에는 모윤숙·최정희 등과 함께 일본의 조선 문인 회유를 위한 조선문인협회에 가입해 간사로 결전문화대강연회에 참가하여 시를 낭독했다. 1943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문화부에 들어가서 군국주의를 찬양하거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작품인 흰 비둘기를 날려라’, ‘진혼가’, ‘출정하는 동생에게’, ‘학병9편을 1945225일 발간한 제2 시집 <창변>에 발표함으로써 큰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미처 피난을 못가면서 북에서 온 임화, 김사량이 이끈 문학가 동맹 및 문화인 총궐기대회 등의 공산주의 부역 활동에 참여했다가 9·28 수복 이후 '부역자 처벌 특별법'에 의거, 20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헌구와 김상용 등의 석방 건의문과 문인들의 구명운동으로 19514월 출감하여 이듬해 부역 혐의에 대한 해명의 내용을 담은 오산이었다를 발표했다. 1955년 서라벌예술대학에 출강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수필집 여성서간문독분을 출간했다. 1957616일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독신으로 살았던 노천명의 시에는 개인적인 고독과 슬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서정이 나타나 있다. 계획적의지적지성적이기보다 직감적순정적서정적이라고 평가한 조연현 평론가나 연둣빛 수채화 같은 은은한 삶의 향기가 높다고 시인 정지용이 평할 만큼 고운 작품을 남겼으나, 친일 행적으로 평가절하된 작가라 하겠다.(<월간조선> 20172월호)

 

사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에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드면 나도 사나이였드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

 

갑옷 떨쳐입고 머리에 투구 쓰고

창검을 휘두르며 싸움터로 나감이

남아의 장쾌한 기상이어든-

 

이제

아세아의 큰 운명을 걸고

우리의 숙원을 뿜으며

저 영미를 치는 마당에랴

 

영문으로 들라는 우렁찬 나팔소리-

 

오랜만에

이 강산 골짜구니와 마을 구석구석을

흥분 속에 흔드네-

 

노천명은 흰 비둘기를 날려라’, ‘진혼가’, ‘출정하는 동생에게’, ‘학병9편을 1945225일 발간한 제2 시집 <창변>,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싱가폴 함락5편을 <매일신보><조광> 같은 친일매체에 5, 14편의 친일 작품을 발표했다. 1943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며 조선 청년들의 전쟁 참여를 촉구하거나 가미카제 특공작전에 참여해 전사한 조선인을 칭송하거나 전쟁 지원을 권하는 작품이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으며,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 위원회가 발표한 친일 반민족 행위 704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사진:<월간조선> 2017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