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배우는 인물사/인물여지도

오늘은 나도향 타계

윤의사 2023. 8. 26. 11:09

작가 나도향(羅稻香:1902-1926)은 한국 근대 문단의 천재 작가로 평가받는다. 나도향은 1902330일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1-56번지에서 양의사인 아버지 나성연과 어머니 김성녀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나도향의 본명은 나경손((羅慶孫)인데 한의사인 할아버지가 '경사스러운 손자'라는 뜻으로 이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나도향 본인이 가부장적인 가정의 모습을 싫어했기에 자신이 직접 지은 '벼꽃 향기'라는 뜻으로 '도향'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의 집안에서는 잠시 떠돌다가 사라지는 향기처럼 나도향이 일찍 죽었다고 생각해 이 이름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집안의 기대에 따라 나도향이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1918년 할아버지의 강권으로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지만, 문학에 뜻이 있던 나도향은 1년 만에 가족 모르게 의전을 중퇴하고 창작 활동에 나섰다. 그리고 문학 수업을 위해 집에서 돈을 몰래 가지고 일본 도쿄의 와세다대학 영문학에 입학하지만, 집에서 학비를 보내지 않자 포기하고 귀국하였다. 와세다대학에서는 사학부 수강생이었던 시조 시인이자 사학자인 이은상을 만나 이후 둘도 없는 벗으로 지냈다.

가부장적 집안 분위기를 싫어한 나도향은 작품에서 냉철하게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반항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19세 어린 나이에 일간신문에 100회가 넘는 장편을 연재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193.1운동 때 할아버지가 "철원 애국단 사건"에 연루되어 1923년에 함흥 감옥소에서 석방될 때까지 일본 경찰의 감시대상자로 있다가 1924년 끝내 사망하였다. 이 영향으로 집안의 경제가 기울어 1919년 경북 안동에서 1년간 보통학교 교사 생활을 하였다. 이때 중편소설 <청춘>(1926)1920년 탈고했으나 출판은 자신이 근무한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1926년에 하였다.

나도향은 결혼을 못했지만 첫사랑으로 일본인 여교사 마츠모토을 만났으나 일본인과 한국인이라는 문제로 헤어져야만 했다.

1921년 홍사용이 출옥해 나도향과 박영희와 함께 절망에 빠진 시대 현실을 치료해줄 잡지를 만들기로 해 19221백조를 창간하였다. 창간호에는 홍사용의 서시 백조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를 비롯해 박종화의 시 밀실로 돌아가다’, 나도향의 소설 젊은이의 시절등을 실었다. 이 잡지는 낭만주의 경향의 시와 자연주의 경향의 소설을 실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로 192393호를 겨우 출판하고 이후 발행은 중단되었다. 이때 나도향의 두 번째 사랑이 찾아왔다. 기생 단심과의 만남이었지만, 그녀가 다른 곳으로 팔려가는 바람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였다. 장편소설 <환희>(1922)는 단심을 모델로 한 소설로 작품 속의 주인공이 부잣집 첩으로 가는 것이 그가 사귄 애인 단심과 비슷했다.

1923년 나도향이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현진건 등과 함께 기자로 활동했다. 이때 나도향은 자신의 대표작인 <물레방아>(1925), <벙어리 삼룡이>(1925), <>(1925)을 발표하였다. 나도향의 작품이 만개한 시기로 작품에서도 애정윤리, 빈곤의 문제와 냉혹한 현실 등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주의적, 사실주의적 경향의 작품을 창작하였다. 특히 농촌의 생활모습과 풍속을 자세하게 묘사해 1920년대를 연구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이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 폐렴으로 1925년 여름 요양을 할 목적으로 마산에서 친구 이은상의 고향집에 3개월 동안 머물렀는데, 이때의 체험을 단편피 묻은 편지 몇 쪽(1926) 에서 담겼다.

 

마산에 온 지 벌써 두 주일이 넘었습니다. 서울서 마산을 동경할 때는 얼마나 아름다운 마산이었지요. 그러나 마산에 딱 와서 보니 동경할 때 그 아름다운 마산은 아니요, 환멸과 섭섭함을 주는 쓸쓸한 마산이었나이다. 하지만 나는 남들이 두고두고 몇 번씩 되짚어 말해온 조선 사람의 쇠퇴라든지, 우리의 물락을 일일이 들어서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중략)......

바람도 없고, 물결도 없습니다. 바다가 아니요, 호수같이 마산만의 푸른 물은 마치 어떠한 그릇에 왜청(倭青, 검은 빛을 띤 푸른 물감)을 풀어서 하나 가득 담을 듯이 묵직하고 진합니다. 그 위로 사람이 굴러도 빠지지도 않고 거칠 것도 없을 듯이 잔잔하고 평탄합니다.

 

--나도향 피 묻은 편지 몇 쪽(1926)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경제적인 문제로 귀국해 집으로 갔을 때 그의 행색이 거지같아 몰라볼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천재 작가는 젊은 나이에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폐병으로 1926826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천재였다고 하는 것은 작품을 쓴 기간이 5-6년에 불과하지만 장편소설 2편과 단편소설 20여 편을 지었으며, <벙어리 삼룡이>는 한국 근대 문학 사상 가장 우수한 단편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을 정도이다.

나도향(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물레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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