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박물관/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윤봉길의사기념관)문학가 윤봉길의사

윤의사 2022. 2. 13. 15:15

3.1운동의 영향은 윤봉길의사에게도 다가왔다.

학교에서는 오직 일본 사람 아래 조선 사람을 두고 그 사람들의 심부름꾼으로 양성할 목적으로

단지 일본글과 일본말, 그리고 간단한 산수를 가르치는 교육을 받기싫은

윤봉길의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새로운 학문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윤봉길의사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개벽>잡지를 읽으면서 스스로 배움을 익혀 나갔다.

그리고 윤봉길의사는 집에서 2km쯤 떨어진 가막고개(까마귀가 많이 모여있다고 하여 까마귀 고개로도 불림)에 있는

'오치서숙'을 운영하는 성주록 선생을 찾았다.

성주록 선생은 성삼문의 후손으로 학문이 깊고 인품이 훌륭하여 고을에서는 이름이 있는 선비였다.

윤봉길의사의 뜻을 확인한 성주록 선생이 제자로 받아들였다.

<대학>에서 시작하여 사서삼경을 공부하였다.

성주록 선생의 가르침은 윤봉길의사의 인격을 기르는 토대가 되었다.

공부를 하면서도 <동아일보> 등의 신문과 <개벽> 등의 잡지를 통해 국내외 정세를 파악하는데도 소홀함이 없었다.

오치서숙에서는 봄가을에 시회가 있었다.

일정한 글자를 지정하여 운을 내주면 그 운을 시열에 배열하여 오언이나 칠언의 시를 짓는 것이다.

윤봉길의사가 16세 되던 해 수암산 기슭의 두엄바위에서 열린 한가위 시회에서 윤봉길의사는 제일 먼저 시를 지어 독 장원을 하였다.

 

다음은 오치서숙의 시 쓰기대회에서 독 장원을 한 옥련환시(玉蓮環詩) 학행(學行)의 7언 절구이다.

 

不朽聲名士氣眀(불후성명사기명하)/士氣明明萬古淸(사기명명만고청)

萬古晴心都在學(만고청심도재학) /都在學行不朽聲(도재학행불후성)

 

길이 드리울 그 이름 선비의 기개 맑고/선비의 기개 맑고 밝아 만고에 빛나리

만고에 빛나는 마음 학문에서 우러나며/모두 학행이 있어 그 이름 스러짐이 없으리

 

성삼문의 충절과 기개를 되새기며 스스로 갈고 닦은 글이라고 하겠다.

이 시를 짓고난 후 성주록 선생은 윤봉길의사를 조용히 불러

“자네가 떠날 때가 되었다. 내 학문이 원래 보잘 것이 없어 더 이상 자네에게 가르칠 바도 없으니 이제 이곳을 떠나 나보다 훨씬 뛰어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도록 하세."

그리고 석별의 기념으로 성주록 선생의 아호인 '매곡'에서 '매'자를, 그리고 윤봉길의사의 마음 속에 새겨진 스승인 성삼문의 호 '매죽헌'에서 '헌'을 떼어 '매헌'이라는 아호를 지어주었다.

매화가 추위 속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향기를 내뿜는 나무이니, 어려운 시기에 일본에 굴하지 말고 꽃을 피워 나라에 향기를 주기를 바라는 성주록 선생의 뜻이 담긴 아호였다. 윤봉길의사가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것을 당부하는 뜻이었다. 그리고 윤봉길의사는 그 뜻을 8년 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학행

윤봉길의사기념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