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박물관/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윤봉길의사기념관) 묘지팻말사건

윤의사 2022. 2. 20. 14:54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을 들어서면 중앙홀 왼쪽에 벽화가 보인다. 

1992년 4월 29일에 설치한 일랑 이종상 화백의 작품으로 윤봉길의사 생가 뒤뜰의 대나무로 만든 붓으로 그린 그림이다.

사진의 그림은 그 중 일부이다.

 

윤봉길이 오치서숙에서 공부를 하다가 바람을 쐴겸 산자락으로 산책을 나섰다.

이때 숨을 헐떡이며 공동묘지 비탈길을 내려오는 남자가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공동묘지에서 뽑아온 묘지팻말이 한 아름 안겨있었다.

한, 둘이 아닌 공동묘지의 모든 묘지팻말을 뽑아온 듯 하였다. 

그는 윤봉길에게 다가와 물었다.

"글을 아십니까?"

"예, 압니다만, 무슨 일이십니까?"

윤봉길의 말이 끝나자 그는 안고있던 팻말을 윤봉길 앞에 내려놓았다.

윤봉길이 보니 공동묘지에서 뽑아온 팻말이 틀림없었다. 묘지 주인의 이름이 적혀있는 묘표였던 것이다. 

이 당시에는 공동묘지에 조상들을 묻기를 꺼리던 때였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나 공동묘지에 묻었던 때였다.

윤봉길의 마음은 그가 너무 한심스러우면서도 쾌심하기도 하고 어이도 없었다.

"무슨 일로 묘지팻말을 뽑은 것입니까?"

"이유가 있어 그러한 것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아버님을 저 산 모퉁이에 모셨는데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으니 도와주십시오?"

윤봉길의 마음은 무너졌다.

그는 글자를 모르니 아버지의 산소를 찾겠다는 마음에 묘지팻말을 뽑아와서 글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볼 참이었던 것이다.

"아버님의 함자가 어떻게 됩니까?"

"김아무개입니다."

윤봉길은 묘지팻말을 살펴보고나서 말했다.

"본관이 김해가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의 얼굴은 이제 아버지의 묘소를 찾았다는 듯이 환해졌다.

"고맙습니다."

윤봉길은 그에게 물었다.

"묘지팻말을 뽑았으면 표시라고 한 것입니까?"
그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 그냥 뽑아오기만 했군요. 그렇다면 정말 큰 일이네요. 당신 선친의 묘소는 물론 이 묘지 팻말의 주인들도 모두 찾을 길이 없으니 말입니다."그는 윤봉길의 말에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였다."무지가 죄로다. 이것은 이 청년 한 사람만의 통곡이 아니라 이 나라 글 모르는 사람들의 통곡 소리이다. 일본 침략자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이것이로다."묘지팻말사건 이후 윤봉길은 결심하였다.'그래, 무지한 국민들에게 글을 가르쳐야 해.'윤봉길은 문맹퇴치운동에 나서며 농촌부흥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일본의 침략에서 벗어나기 위한 항일운동의 길로 나서기로 하였다.